권력 앞에서도 당당한 ‘펜’을 보고 싶다
권력 앞에서도 당당한 ‘펜’을 보고 싶다
  • 이형모 기자
  • 승인 2018.04.08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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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형모 취재1팀장(부국장)

구본영 천안시장이 구속됐다가 3일 만인 6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원은 “범죄사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록 풀려나긴 했지만 그가 받고 있는 혐의가 벗겨진 것은 아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구 시장은 직권남용 및 수뢰후부정처사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구 시장의 비리 혐의의 전말은 본보 천안 주재기자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시장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유치장에 수감되고 보석으로 풀려나는 안타까운 과정을 지켜보며 자화자찬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기자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한 번쯤은 짚어보고 싶었다.

본보 천안 주재기자는 지난 6월부터 구 시장의 비리 의혹을 지속적으로 보도해 왔다. 그는 취재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의혹이 있다는 제보를 기자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주재기자를 경험한 본 기자는 그 지역에서 절대권력인 시장을 상대로 한 비리 혐의 기사를 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확실한 물증과 증인이 없으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되기 쉽다.

취재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격렬한 항의전화와 갖은 외압과 회유는 기본적으로 감수해야 한다. 기자의 양심에 비리 의혹을 침묵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권력에 맞서는 일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본보에서 천안시체육회 채용비리를 보도하자 예상대로 천안시는 본사에 취재 거부와 광고·신문구독 중단이라는 탄압으로 맞섰다. 언론을 통제하는 전형적인 수단이 총동원됐다. 비판적인 언론의 `손발을 묶고'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천안시의 잘못된 언론관에 의한 언론 탄압보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같은 언론사의 행태였다고 말하고 싶다.

비리 의혹이 처음 보도됐을 때는 제보에 의한 한 언론사의 보도로 가볍게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후속보도가 이어지고 증인까지 나왔다면 늦었더라도 당연히 보도를 하는 게 기자의 기본이다.

시민의 손으로 뽑은 시장이라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비리 의혹은 당연히 보도됐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천안시의 탄압보다 동료 기자들의 침묵에 본보 기자의 마음은 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으로 미뤄 짐작된다. 기자로서의 책임감이 없었다면 구 시장의 혐의는 영원히 묻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침 MBC에서 방송한 스트레이트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최근 기자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이 언론을 통제해 온 사례가 적나라하게 전파를 탔다.

언론사 간부들이 삼성의 관계자에게 보낸 낯뜨거운 문자 메시지, 광고가 기사 작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현재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디가서 기자라고 명함조차 내밀기가 부끄러웠다. 한 기자의 열정과 끈기는 언론사가 난립하면서 비록 무뎌지긴 했지만 `펜은 어떤 권력'에도 굴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본사 회의 때 “억울한 한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기자의 양심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고 말한 천안 이재경 선배. 선배가 한 말 기자생활 내내 마음속 깊이 새겨둘 것이다. 또한 천안시의 언론탄압에 목소리를 내 준 충북기자협회에도 “감사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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