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중심에 정당이 있는가
정치의 중심에 정당이 있는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4.08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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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정당을 중심 매커니즘으로 하여 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폭넓게 표출하고 대표하는 방법을 통해 다수의 힘을 동원하고,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정책적 대안을 실현하고, 그 실현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지지를 동원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적 행위'. 한 신문의 칼럼에서 읽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민주정치'를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민주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구현해나가야 한다는 명제를 밝히고 있다. 정당은 사회적 문제를 폭넓게 대변하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 다수의 힘과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집권 정당이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지지를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연하고 있다.

최 교수의 정의는 `그렇다면 우리 정당들은 민주정치를 주도하는 핵심동력이 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아니올씨다'가 될 것 같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 보수의 궤멸, 정권교체, 더불어민주당의 독주체제 등 한국정치 전반을 포괄한 최근의 대변혁은 정당의 기능을 통해 야기된 결과가 아니다. 제 구실을 못하는 정당을 보다못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판을 뒤엎은 것이다. 이 나라 정당들은 예기치않았던 시민봉기에 놀라 추세만 살피다가 파고가 쓰나미급에 도달하자 슬그머니 올라타 과실을 챙기거나, 매우 누추하고 가련한 방식으로 저항했을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당들이 촛불운동을 통해 스스로의 무능에 대한 성찰과 각성은커녕 수치심조차 곱씹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은 치욕적인 혐의들로 중형을 받거나 구속 수감된 대통령 2명을 잇달아 배출한 정당이다. 그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24년형을 선고받자 이런 짧은 논평을 냈다. “이미 예견됐던 판결이다. 재판 과정을 생중계한 것은 개탄스럽다. 오늘 이 순간을 가장 간담 서늘하게 봐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요지는 “당신도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대통령에 대한 협박 비슷한 것이었다. 반성은커녕 한마디 변명조차도 없는 낯두꺼운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논평이었다.

한국당의 대여 전략은 일단 혹은 무조건 반대인 것 같다. 설득력 있는 대안은 구경하기 어렵다.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결정되자 “한반도에 봄이 온다고 난리지만, 아편으로 백일몽을 꿈꾸는 아편장수의 봄일 뿐”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비판의 방식도 이렇게 거칠고 졸렬하다.

문재인 정권의 독재를 심판하겠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정작 자기 당 홍준표 대표의 독선에는 입을 닫고 있다. 최근 시·도지사 공천에서는 최소한의 인적 수혈도 하지 못하는 당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선거연령 18살 하향에는 학령제 연계라는 무의미한 조건을 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미래 유권자를 포섭하기보다는 기피하는 궁색한 전략에서 당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촛불에 기대 집권하고 한국당의 지리멸렬에 의지해 존재를 이어가는 더불어민주당도 개혁적 민주정치의 구심이 될 깜냥이 되는지 의심스럽다. 이권만 일치하면 자유한국당과의 담합을 주저하지 않는다.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이 대표적이다. 대다수 광역의회가 기초의원 선거구를 정하면서 시·도 획정위가 제안한 4인 선거구 대부분을 2인 선거구로 되돌렸다. 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의석을 나눠 먹고 소수정당에는 곁을 주지 않기로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표의 비례성을 강화하겠다고 한 청와대 개헌안과도 정면 배치된다. 총선 성적이 저조한 정당은 등록을 취소해 퇴출시키자는 시대착오적 법안을 추진하는 데도 두 당이 의기투합한 상태다.

여당이 앞장서 고질적 적폐로 꼽혀온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근절하지 못하는 점도 실망스럽다. 출판기념회는 서점에서는 팔릴 가능성이 없는 책을 출간한 갑이 을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비열한 공간이다. 많게는 정가의 수십~ 수백배씩 받는 폭리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불공정 시장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얼마를 받았는지 밝히지 않아도 돼 정치자금법을 무력화하는 적폐로 꼽혀왔다. 지난 국회에서 책의 정가만 받도록 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여야가 야합해 부결시켰다. 최근 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나 여당은 고개를 돌리고 있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돼 민주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노 학자의 지론이 현실에서는 요원한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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