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
에테르
  •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4.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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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과학은 존재하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귀신, 영혼, 텔레파시 같은 것들은 과학의 연구 대상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자들은 귀신보다 더 허무맹랑한 것을 믿어왔다. 그것이 바로 에테르라는 물질이다.

에테르의 존재는 아인슈타인 이전의 모든 과학자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가상의 물질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도 믿었고, 전자기학을 완성하고 전자파를 예언한 맥스웰도 믿었고, 상대론의 기초가 된 로렌츠변환을 완성한 그 로렌츠도 믿었다. 왜 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한 물질의 존재를 믿었던 것인가?

고대로부터 철학에서 무(無), 수학에서 영(0), 과학에서 진공(眞空)은 매우 골치 아픈 문제였다. 철학에서 무는 아직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남아 있다. 무는 존재하는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 모순 말이다. 수학에서 영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다. 물건을 헤아릴 때, 한 개, 두 개, 세 개 등으로 헤아린다. 그런데 영 개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명칭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그런 면에서 영의 도입은 대단한 수학적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학에서는 진공이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난제였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은 진공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토리첼리가 진공을 실험으로 입증해 보이고, 원자의 존재가 확실해지면서 원자들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어야 하므로 진공의 존재는 분명해졌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빛 때문이었다. 빛은 파동인데 진공 속에서 빛이 전달된다. 모든 파동은 매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진공 속에도 빛을 전달하는 어떤 물질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자들은 그 가상적인 물질을 `에테르'라고 불렀다. 에테르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지만 진공을 채우고 있으면서 빛을 전달하고, 중력과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가상의 물질이다. 이제 과학자들에게 에테르가 없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면서, 이 에테르의 존재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과학자들의 가장 큰 난제는 빛의 속력에 관한 문제였다. 속력을 점점 빠르게 하면 끝없이 속력이 증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빛 속도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한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빛의 속력을 초속 30만 킬로미터라고 할 때, 빛과 반대방향으로 10만 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리면서 보면 빛의 속력이 40만 킬로미터로 보여야 할 텐데, 실험을 해 보면 이 경우에도 빛은 역시 30만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력에 관한 이런 논리적 모순은 모두 에테르가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히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고, 진공을 정말로 텅 빈 공간으로 본 것이다. 텅 빈 공간, 아무것도 없는 진짜 진공을 가정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절대적인 공간은 없어진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대신 광속을 불변인 양으로 도입하고 갈릴레오가 제안한 상대성원리를 동원하여 상대성 이론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제 진공에 에테르가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과학에서 진공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철학에서 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이 물리학에서 진공의 문제도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진공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진공은 모든 것을 창조해 내는 신기한 공간이다. 이 우주 자체가 진공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진공, 그래서 에테르가 없어졌어도 진공은 아직도 가장 큰 미스터리다.

무, 영, 진공, 이 셋은 하나이면서 다른 것이고 다른 것이면서 하나다. 그래서 아직도 미해결 문제이다.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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