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상처 입은 용의 귀향
봄, 상처 입은 용의 귀향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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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요/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이은상 시, 홍난파 곡> 하루의 대부분을 KBS 클래식 FM을 듣는 습관이 꽤 오래되었다. 불만인 것은 우리 가곡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밤 9시30분부터 10시까지의 <정다운 가곡> 프로그램 30분뿐이라는 것. 그것도 월요일부터 금요일, 주중에만 한정된다.

그런 짙은 아쉬움 속에 `상처받은 용'윤이상이 유골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꽃이 흐드러진 자연적 봄이 왔고, 평양에는 우리 대중 가수들이 `봄이 왔다'를 상징하며 남녘의 봄이 전해졌다.

고향은 더 이상 애잔하지 않다.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떠나 살게 되는 일도 드물고, 첨단 정보기술이 난무하는 시대에 고향소식을 듣거나 보지 못하는 일도 사라진 탓이다. 무엇보다 연고에 대한 두터운 그리움이 식어가는 세태도 더 이상 고향을 사무침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윤이상은 대한민국이 낳은 현대 음악의 거장이다. 다음 백과에는 `동양의 정신이 충만한 독특한 색채의 선율로 현대 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생전에 현존하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혔다'고 소개하고 있다.

음악도시 통영이 고향인 윤이상은 1957년 베를린으로 진출하면서 내내 독일을 중심으로 뛰어난 음악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1995년 11월 머나먼 타향 땅 독일 베를린에서 78세의 일기로 숨졌다.

윤이상의 삶은 처절했다. 박정희 정권시절,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체포, 고국에 강제 송환된 그는 사형 선고와 수감, 대통령 특사 형식으로의 석방의 박해를 거쳐 왔다. 결국 독일로 국적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는 죽을 때까지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었고, 대한민국은 그가 작곡한 음악의 연주를 금지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독일의 소설가 루이제 린저에 의해 <상처받은 용>으로 남아있던 그는 백골이 되어 푸른 남해가 출렁거리는 고향 땅 통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북녘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공연단이 남녘을 찾아왔고, 화답으로 남녘의 가수들이 평양 한복판에서 북한 주민과 어우러졌다.

어릴 적 음악시간에 배웠던 우리 가곡을 흥얼거리는 건 어느덧 돌이킬 수 없는 추억으로 남고 말았다. 장르의 다양성으로 진동하는 대중가요와 가곡의 편차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어쩌다가 세계의 예술 문화적 질서를 선도할 수 있는 거장의 귀향마저도 60년이 넘도록 가로막았는지, 그 끝내지 못하는 이념과 사상이 지금도 온전하게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인지 못내 궁금할 따름이다.

막힌 것은 뚫어야 하고 맺힌 것은 풀어내야 사무친 원한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죽어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는 모진 넋이라도 평화의 안식을 얻게 될 땅 한반도. 그리고 서울과 평양, 푸른 파도 넘실거리는 통영의 땅.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 휘말려 오기는 영 한 마리 호접처럼/ 앞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어룬 님 기두릴까 가벼웁게 내려서서/ 포란 잔 떼어 물고 낭자 고쳐 찌른 담에/ 오질 앞 다시 여미며 가뿐 숨을 쉬도다//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 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호접처럼/ 앞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나는 윤이상이 작곡한 김상옥 시 <그네>를 통한으로 듣는다.

그리고, 남쪽 끝에서 시작된 봄꽃의 개화가 순식간에 온 국토를 뒤덮는 봄. 개나리와 벚꽃, 심지어 조팝나무 흰 꽃마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봄의 탄식만큼 소란스러움이 환희로 번지는...

`낡은 이념이 만들어 낸 굴절된 눈'과 `낡은 이념이 만들어 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문재인 대통령 제주 4.3추념사 중)를 뚫고 제주에서 시작돼 온누리로 퍼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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