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냉장고
버려진 냉장고
  • 김경수<시조시인>
  • 승인 2018.04.03 2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어느 날 수영의 집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수영과 오 여사가 밀고 당기는 부부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왜 싸우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영의 눈을 찌르는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려진 냉장고였다.

수영은 오 여사에게 멀쩡한 냉장고를 왜 버리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오 여사는 냉장고가 너무 낡아 자주 고장이 난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수영의 말이 귀찮은 듯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수영은 오 여사의 이런 태도에 마음 한구석이 섭섭해져 갔다. 예전에는 아무리 고장이 나도 버리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수영은 물건이 고장 나도 고쳐 쓰려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물며 고장 나지도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수영을 구두쇠, 짠돌이라고 부르며 답답하고 고루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게다가 수영에게는 어머니의 손때 묻은 향수와 잊을 수 없는 짠한 얘기도 있었다.

이러한 냉장고를 상의 한마디 없이 오 여사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마음대로 버리는 것을 수영은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수영은 오 여사가 물건을 버릴 때마다 낭비와 사치가 있는 듯하다고 느끼곤 하였다.

오 여사의 그러한 행동은 요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수영은 갑자기 판매원인 두 남자에게 버려진 냉장고를 자신이 쓰겠다고 안으로 들여 놔 달라고 부탁하였다. 두 남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반가운 생각에 버려진 냉장고를 얼른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그들에겐 짐을 덜어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광경을 본 오 여사가 큰 소리로 왜 냉장고를 도로 들고 들어오는 것이냐며 당장 치워달라고 두 남자에게 강한 어조로 부탁하였다.

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오 여사의 말을 듣기로 하고 냉장고를 다시 밖으로 갖고 나갔다. 얼마 후 두 남자가 최신형 대형 냉장고를 집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수영은 오 여사의 버리는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오 여사는 수영의 버리지 못하는 행동이 못마땅했다. 수영은 버려진 냉장고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마음이 씁쓸했다. 그런 반면 오 여사는 새 냉장고를 어루만지며 흐뭇해했다.

예전에는 물건이 귀하던 시절이라 아끼고 고쳐 쓰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곧바로 교체하는 것은 물론 물건을 사용할 수가 없어 바꾼다기보다는 그 이유도 다양해졌다. 유행과 편리함과 자기 취향과 개성을 위하여 또한 남보다 앞서 가기 위하여, 그 외에도 등등 있겠지만 선택이 좁았던 예전과 폭이 넓어진 지금의 상황을 그려본다면 그렇다. 변화란 버리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또한 새로워지기 어렵다. 다만 버리기 곤란한 것을 버리려 할 때 문제로 남을 수 있다. 무릇 문물이란 시대를 어떻게 만났느냐에 따라서 그 입장과 선택은 다양하게 놓일 수 있다. 그것은 가치관에 대한 변화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