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거북
슈퍼 거북
  • 민은숙<청주 동주초 사서교사>
  • 승인 2018.04.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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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민은숙

근무 연한이 다 차서 새 학교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익숙한 곳에서 떠나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느라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은 남의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 같다. 익숙한 내 소금통이 없고 냄비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싶은 나날이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과 잘하고 싶은 부담감 때문에 어깨가 무거웠다. 실수도 잦아 다른 선생님들에게 민폐도 많이 끼쳤다. 쉽게 할 수 있었던 일도 확인을 해야 하고, 아니다 싶은 건 고쳐서 다시 하다 보니 일은 계속 쌓여만 간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한 달이었다.

게다가 한 선생님이 `미생'을 보고 싶어하길래 파손된 학교 도서관 책을 대신해 내 책을 빌려 드리기 전 상태를 점검하다 다시 읽게 되었다. 머리를 식히려고 보기 시작한 드라마는 동생이 추천한 김남주 주연의 `미스티'였다.

두 작품 다 훌륭한 직업 정신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일할 의욕을 잊었을 때 보면 좋을 작품인 것 같다. 이번엔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는 장그래와 고혜란은 정말 슈퍼 히어로다. 나도 저렇게 멋지게 일할 수 있으면 참 좋겠구만 하는 불평만 나오더라.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봐서는 안 되는 작품을 골라 버렸다.

그러다 나에게 위안이 되는 두통약 같은 책. 이번에 소개할 `슈퍼 거북(유설화 글·그림, 책읽는곰)'을 찾았다. 노란 표지에 거북이가 `빠르게 살자.'라는 구호 적힌 머리끈을 질끈 매고 있다. 이 이야기는 동화인 `토끼와 거북이'를 모티브로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동화다.

이야기는 빠른 토끼를 이긴 거북이가 슈퍼 거북으로 유명해지고, 스타가 된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원래 꾸물거리는 느린 거북이 꾸물이는 느릿느릿한 행동으로 다른 동물들의 수군거림을 듣게 된다. 대중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꾸물이는 힘든 훈련을 통해 `슈퍼 거북'이 되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아마 모두가 짐작할 것 같다. 이야기는 생각 그대로 흘러간다. 반전 없는 생각 그대로의 결말이 오히려 놀랍다. 읽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무리했던 꾸물이처럼 나도 무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지난 한 달 동안 저학년 아이들이 이 책 찾아달라고 계속 졸라댄 책 중 하나다. 덕분에 서가 정리를 하다 발견하곤 바로 뽑아서 책상 위에 따로 빼두고 읽어 본 책이다. 애들도 자기와 거북이를 동일시해보고 있나 보다. 꾸물이처럼 머리 질끈 매고 나에게 무리한 특훈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새로 사야 할 책 목록에 치킨 마스크(우쓰기 미호, 책읽는곰)도 넣어 두어야겠다. 나란히 전시해 놓으면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다. 나답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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