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소로리유직(2)
1만5천년 긴 잠에서 깨어난 소로리볍씨
청주 소로리유직(2)
1만5천년 긴 잠에서 깨어난 소로리볍씨
  • 우종윤<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04.01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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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사람들
▲ 우종윤

1997년 12월 3일 우리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였다. 그해 12월 18일은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정권이 바뀌었다. 경제혼란과 정권교체라는 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때이다. 이 시기에 청주 소로리 유적에서는 눈보라가 뿌리는 매서운 추위와 두텁게 언 땅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문화흔적을 찾는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조사결과 미호천 유역에서 처음으로 구석기 문화층을 확인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를 검출하였다.

볍씨는 토탄층에서 찾아졌다. 당시 터 닦기 공사가 완료된 지표면으로부터 약 6m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3차례(1997~1998. 2001. 2012년)의 조사결과 이곳에는 형성시기를 달리하며 4매의 토탄층이 형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제1토탄층(9,450~9,580bp), 제2토탄층(12,500~14,820bp), 제3토탄층(16,250~17,320bp), 제4토탄층(44,500~52,990bp)이다. 이러한 토탄층은 마지막 빙하기의 해빙기에 증가한 유수작용으로 미호천 주변에 대규모의 저습지가 형성되고, 여기에 식생이 발달하지만 다시 추운 기후로 바뀌면서 저습지 식물이 매몰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여러 매의 토탄층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볍씨와 함께 다양한 동·식물 유체가 검출된 것은 제2토탄층이다. 연대 값, 지질분석, 꽃가루분석, 수종(樹種)분석 및 전 지구적인 기후변동과의 비교 등으로 볼 때 제2토탄층은 마지막 빙하기 중에서도 온난한 기후조건하에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고대볍씨 18톨, 유사볍씨 109톨이 검출되었다. 볍씨와 함께 출토된 딱정벌레과 화석은 애충시절에 벼과 식물의 줄기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져 벼와 상관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15,000년 동안 토탄 속에 묻혀 긴 잠을 자다가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 강서성 조통환유적에서는 볍씨가 출토되지 않았으나 식물규소체 분석으로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15,000년 이전)부터 야생벼가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마지막 빙하기 때인 후기 구석기 말기에 벼가 자랄 수 있는 기후환경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볍씨는 중국 강서성 선인동 동굴유적(10,500bp), 중국 호남성 옥섬암 동굴유적(11,000bp)에서도 출토되었다. 이와 비교할 때 지금으로서는 소로리 볍씨가 가장 오래된 볍씨라 할 수 있다. 소로리 볍씨는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단계인 순화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인구의 약 34%인 30억명이 주식으로 하는 쌀이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시베리아 툰드라지대에서는 지하 20~40m 깊이의 마지막 빙하기 때의 지층에서 씨앗을 발견하여 배양하였다. 31,800년 전의 씨앗이 꽃을 피웠다. 오늘날에도 있는 패랭이꽃이었다. 생명의 씨앗이 오랜 역사를 거닐어 온 듯하다. 소로리 볍씨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결과로 볼 때 연대가 빠르다거나 당시 기후환경에서 벼가 자랄 수 있을까라고 불안하게 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청주시의 심벌 마크가 씨앗을 이미지화한 것이고, 그 씨앗은 최고의 생명 씨앗인 청주 소로리볍씨이다. 생명문화도시를 표방한 청주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청주 소로리볍씨는 생명의 원천인 쌀의 가치를 밝혀 줄 인류 생명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최근 볍씨 출토 인근에 소로리볍씨 상징 조형물이 세워지고, 청주소로리볍씨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소로리 볍씨의 보존과 활용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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