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事必歸正)
사필귀정(事必歸正)
  • 공진희 기자
  • 승인 2018.04.0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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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수법은 다양했다. 빽과 연줄을 등에 업고 합격자가 내정됐다. 면접위원도 아닌 고위인사가 면접에 참석해 특정인에게만 질의하며 자신의 의도를 드러냈다.

고위인사가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석해 지인을 채용했다. 경력도 없고 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고위인사 지인의 자녀가 특별채용 형식으로 채용됐다. 인사위원회에서 특정인 채용이 부결되자 고위인사의 지시로 다시 위원회를 열어 결정을 번복했다. 인사위원회에서 부결된 특정인을 채용했다. 자격 미달 응시자를 최종 합격시켰다.

특정인을 일단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꼼수채용'도 발견됐다. 아예 공모기준을 특정인에 맞춰 뜯어고친 사례도 있다.

현대판 음서제도라 불리며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청춘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준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민낯이다.

중세 봉건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공기업에서 벌어졌다.

강원랜드는 2013년 채용비리와 연루된 직원 226명 중 퇴직·휴직자 11명과 소명 내용 추가 확인 필요자 17명 등 28명을 제외한 나머지 198명에 대해 퇴출을 결정했다.

이에 앞서 한국가스안전공사는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에 나서 2015~2016년 신입·경력사원 공채에서 채용비리로 탈락한 12명 중 다른 곳에 입사한 4명을 제외한 8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들은 오는 7월부터 인턴 교육을 받은 뒤 9월부터는 정규직으로 일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과 금융권에 채용 비리가 만연한 이유로 외압에 취약한 구조와 도덕적 해이를 꼽는다. 기관장과 그들에게 청탁할 수 있는 권력자들끼리의 담합구조가 공정성을 무시하고 범법 행위를 저지르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잘못된 관행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르는 도덕적 해이가 기회의 공정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채용 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비리가 적발되면 엄정하게 처벌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시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지, 인간과 과학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그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음서제도 청산을 외쳐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보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돈과 빽'으로 국가대표 승마선수 자리까지 꿰찬 청춘이 던진 그 말은 실력과 자격을 모두 인정받았으나 `돈도 빽도'없어 고배를 마시며 눈물을 뿌려야 했던 또 다른 청춘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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