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시차
행복의 시차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8.03.2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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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

퇴근길의 하늘이 맑다. 3월 하순에 눈이 내리고 성난 소소리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잠잠하다. 봄꽃이 꽃샘의 심술에 얼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제주도의 벚꽃 소식이 들려온다. 꽃망울이 차가운 눈에 놀랐을 텐데 그 추위를 이겨내고 피었다니 가상하다.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이라 그런지 꽃소식이 어느 해보다도 반갑다.

나도 차를 몰면서 밖의 풍경을 감상 중이다. 남쪽보다는 더딘 봄이 어디쯤 와 있을까 하여 나무에 눈길이 간다. 라디오에서는 벚꽃엔딩이 흘러나오고 그 노래가 마음으로 파고든다. 천천히 마을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시간이면 막차다. 시골의 버스는 자주 있는 게 아니다. 시간마다 있지도 않고 하루에 네다섯 번 오간다. 시골의 버스는 믿을만한 게 못된다. 혹시라도 고장이 나면 거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도시처럼 그다음 차가 바로 오는 것도 아니다.

눈앞에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뛰어서라도 타야 한다. 그 차를 놓치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약속이라도 있으면 지각이거나 못 갈 수도 있다. 도시만 생각하다가 그냥 보내버리고 다음 차를 기다렸다가는 낭패다. 그 차가 빠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내릴 사람이 없다고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에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곧 올 시간이 되었는지 한 줄로 다닥다닥 붙어 서 있다. 거기에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로 본 핀란드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들은 정류장에 늘어선 사람들과의 사이가 뚝뚝 떨어져 있다. 차간 거리를 지키며 달리는 자동차처럼 서로의 간격이 멀다. 내성적이며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그들답다.

유엔 행복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핀란드라고 한다. 그리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국민소득이 우리나라가 더 높지만 우리의 행복지수는 57위다. 그들은 행복한 비결을 남을 쳐다보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한껏 즐긴다고 대답했다. 커다란 것을 쫓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행복의 순위를 놓고 돈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화려한 명예를 꼽기도 한다. 경쟁사회에서 위만 보고 따라가느라 아래에 있는 작은 것들을 지나치고 산다. 느긋한 그들에 비해 우리는 무엇에 쫓기듯이 빨리빨리에 길들여져 있다. 1년에 한 달은 호숫가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핀란드인들이다. 이런 여유는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일 것이다.

음악방송의 디제이는 그저께인 3월 20일이 국제연합에서 정한 행복의 날이라고 한다. 그가 물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얼른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예”라는 말이 뒤늦게 나온다. 행복과 불행 사이의 어디쯤에서 나를 머뭇거리게 했을까.

행복도 타이밍이다. 내게 찾아온 걸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 도착했을 때 제때 타야 하는 시골버스처럼 말이다. 행복했었다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행복해지려고 일한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 바로 지금이 기회다.

나는 묻는다. “행복공항의 어느 노선에 줄 서 있나요?”혹여 나는 현재에, 그이는 미래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서로의 시차를 확인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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