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 집 청년
방앗간 집 청년
  • 김순남<수필가>
  • 승인 2018.03.2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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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순남

참기름을 짜기 위해 방앗간을 찾았다. 손님이 많이 붐비지 않으니 오늘은 금방 기름을 짤 것 같다. 예순을 넘긴 어머니와 이제 마흔이 되었다는 아들, 두 모자가 운영하는 방앗간이다.

처음엔 청년의 부모님이 방앗간을 개업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방앗간이 자리를 잡아갈 즈음 청년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두 모자가 운영해 온 지 이십오 년이 되었다 한다.

오래전 처음으로 집을 장만해 입주한 아파트 근처에 그 방앗간이 생겨 단골이 되었다. 방앗간 갈 일이야 일 년에 네다섯 번 정도밖에 안 되지만, 기름을 짜거나 김장고추를 빻을 때, 혹은 어쩌다 떡을 할 일이 있어도 그 방앗간을 찾게 된다. 지금은 이사해서 조금 멀어졌지만 가까이 있는 방앗간을 지나쳐 그 집으로 발길이 간다.

두 모자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흐뭇하다. 청년의 어머니는 떡을 쪄서 만들거나 콩고물 등 잔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익숙한 솜씨로 하시고, 청년은 미닫이문으로 경계를 이룬 가게 한쪽에서 기름을 짠다.

청년은 잠시 틈이 나면 어머니 쪽으로 와 여자 힘에 겨운 무거운 물건들을 옮겨주며 배달 또한 청년의 몫이다. 가족이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련마는 두 모자는 어느 쪽에서도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청년은 기름 짜는 분야에서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기름을 짜다 말고 깨를 씻어서 어디에서 말렸는지 물어온다. 베란다에다 말렸다고 하자, 참깨는 껍질이 얇기 때문에 씻어서 햇볕에 얼른 말려야 한다고 한다. 참깨가 퉁퉁 불은 상태에서 서서히 마르면 변형을 일으켜 기름이 맑지가 않고 탁하다고 일러준다. 뿐만이 아니다.

지난가을에 들기름 짜러 왔을 때 일이다. 장마철에 들깨를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도 자상하게 알려주었다. 나이로 따지자면 우리 아들보다 서너 살쯤 많아 보이지만 매번 이렇게 청년에게서 한 가지씩 배우게 된다. 청년의 이런 점들이 믿음이 가고 고맙기까지 하다.

내가 그 방앗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방앗간이 자칫 위생적으로 지저분할 수 있는데 분쇄기 등 집기들을 쓰고 나면 깨끗이 닦아 뚜껑을 덮어둔다. 먼지가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늘 위생에 신경을 쓴다.

또한 고추장 담그는 방법을 프린트해서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 어렵게 느껴지는 고추장 담그는 일을 그 설명서대로만 하면 초보자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소한 냄새가 퍼지는 기름틀 앞에서 청년은 내가 가져간 소주병 하나하나에 기름을 담고 있다. 병뚜껑의 거친 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테이프로 밀봉해준다. 기름의 고소함이 날아갈까, 혹여 거친 병뚜껑을 여닫다 손이라도 다칠세라, 섬세하게 신경을 써주는 청년의 마음 씀이 느껴진다.

주위를 돌아보면 많은 청년이 대기업 취업이나, 안정된 공무원 등을 꿈꾸는 이즈음이다. 매번 느끼지만 방앗간 집 청년과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광경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청년의 성공된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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