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람 우암(6) 금기와 침묵
큰 사람 우암(6) 금기와 침묵
  • 강민식<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8.03.2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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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 강민식

오래전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書)라는 두보의 시구에 빗대 옛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는 질책을 받은 적 있다.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후학에 대한 권면이라 생각했다. 다섯 수레 분량이라니. 하지만 책(冊)이나 권(卷) 자의 유래에서 보듯 옛 기록 매체는 나뭇조각 묶음이나 양피지 두루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20편의 <논어>를 죽간에 옮겨 쓴다면 적어도 스무뭉치 이상일 것이다. 굳이 많다고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하여 증평 인물인 김득신이 <백이열전>을 1억 번 이상 읽었다고 하는 만큼 다독은 옛 사람들의 학습 방법 일터이다. 물론 이후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경서에서 파생된 수많은 책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읽어야 할, 입신과 출세를 위한 교재는 확대 재생산되었다.

한편 짧은 글로 이루어진 옛 글은 남송 때 주자에 이르러 본격적인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옛 책 앞에 `주자집주'라는 머리가 붙는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4서 3경은 이때 완성된 것들이다. 4서 중 <대학>과 <중용>은 <예기>에서 따로 떼어내 엮은 책이다.

그런데 17세기 당쟁의 시대를 살다간 인물 중 유독 윤휴는 주자의 <중용>을 달리 봤다. “윤휴는 주자에 반대하고 거슬려서 장구(章句)를 마구 뜯어고쳤으며, <중용>에 이르러서는 주(註)를 고친 것이 더욱 많았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자사(子思)의 뜻을 주자가 혼자 알았는데, 내가 혼자 모르겠는가?'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사문(斯文)의 반적(叛賊)이라.” <숙종실록> 권6, 3년 10월 17일. 곧 사문난적이니 이로 말미암아 3년 후 결국 목숨을 잃게 되었다.

덧붙여 원래 북인이었던 그가 현종 때 전개된 예송(禮訟) 논쟁에서는 남인들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남인이 허적의 탁남(濁南)과 허목의 청남(淸南)으로 나뉘자, 청남과 같이 했다. 하지막 허목과도 사사건건 대립할 때가 많았으니 시세를 바라보는 입장은 독자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서인의 전유물로 여겼던 북벌론마저 내세웠다. 물론 북벌론은 서인과 외척 김석주의 반발로 결국 실현될 수 없었다.

1680년 경신환국 때 사약을 받아 죽은 지 9년, 기사환국 후 아들 윤하제가 아비의 억울함을 격쟁하여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불과 5년 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며 다시 관직을 추탈 당하였고, 1908년 조선의 끝자락에서 죄명을 벗고 벼슬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인조반정 후 서인에 의해 역적이라 비판받던 정인홍처럼, 노론의 독주 속에서 윤휴는 금기 그 자체였다. 노론은 광해군 때 익사공신 2등에 오른 아버지 윤효전마저 간신이라 조롱하였다. 앞선 효종 치세 10년간 `그'를 중심에 둔 북벌론은 현종과 숙종 초 윤휴의 북벌론과 공존할 수 없는 난적(賊)의 광기였다. 시대를 앞서간 경세관마저 부정되었다. 윤휴는 `노론 중심의 역사관'속에서 침묵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던 잊혀진 인물이라는 혹자의 저술도 얼마 전 나왔다.

윤휴는 어머니 경주김씨를 따라 보은에서 머물며 외할아버지 김덕민(德民)에게 배워 학문의 일가를 이뤘다. 1644년 28세에 여주 금사리 백호(白湖)로 옮겨와 문제의 <중용설>을 완성하였다. 그의 호는 이곳 백호에서 따왔다. 1689년 신원된 후 비로소 이곳 선영에 묘소를 이장하였다. 그런데 부친 윤효전과 윤휴의 묘는 대전시 중구 사정동, 보문산 서쪽 자락에 있다. 후손조차 꺼려했던 현실을 피해 1970년 아들 윤경제 묘 아래로 옮겨왔단다. 그의 문집인 `백호문집'마저 1927년 처음 햇빛을 본 이래, 1974년 보완하여 `백호전서'로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다.

윤휴를 품으려 했던 윤선거, 윤증 부자는 끝내 노론과 다른 길을 갔다. 이들의 문인들이 소론(少論)으로 나뉘고 또 양명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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