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나름의 앎
일상생활-나름의 앎
  • 안승현<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3.20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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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안승현

30년 살아온 생활의 터를 옮기는 작업은 끝이 보이질 않는 길인 듯싶다. 좁디좁은 땅에 이리도 많은 것이 자리하고 있는지, 식물이며 돌이며 갖가지 것들이 더 이상 떠나지 않을 듯 자리를 잡고 있다. 하나의 가지, 일년생으로 한 자리 잡은 남부수종 서향은 겨울 추위에 잎은 다 떨구고 꽃 몽우리만 가지 끝에 달고, 목단과 작약은 붉은색 싹을 올리고, 꽃대와 마주하지도 못하는 상사화는 잎이 쑤욱 올라와 있다.

앵두나무, 미선나무, 블루베리, 다래나무도 잎눈과 꽃눈을 달고, 땅속 깊이 잠들었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겨우내 얼었던 땅을 밀치는 소리가 들린다. 돌 틈이며 담벼락까지도 많은 것이 존재감을 앞다퉈 알리기라도 하듯 물을 잔뜩 올려 끝 마디에 구슬을 달아낸 것 같은 착각까지도 하게 한다. 이 오랜 시간의 것들, 오랜 시간 각각의 다른 시간에서 들어와 자리 잡은 것들을 한정된 시간 안에 옮기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봄이니 무작정 캐서 옮기면 될 듯한데.

이식하는 데는 각각의 것들에 서로 다른 시간이 있다. 봄이라 하여 이식하는데 적기는 아니라는 것을 다년간 여러 식물을 대하면서 알게 되었다. 잘못 옮겨심기라도 할 경우에 꽃은 피우지도 못하고 매년 잎만 나왔다가 지기만 하는 녀석들도 있다. 잘 못 알고 대하면서 제 망쳐놓은 일들을 선험 했다.

상사화는 잎이 진 후에 옮겨야 하는데 싹이 올라오고 있고, 명자나무는 가을에 옮겨야 뿌리혹병에 걸리지 않고, 서향은 꽃이 진 6월 장마철이 적기이고, 튤립도 6월 이후에야 가능한 수종들인데. 한정된 시간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남겨놓아야 할 듯하다.

처음 공예에 입문하면서 너구리가마에 대해들은 이야기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너구리가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너구리가마가 아니라 노보리가마(계단식 칸가마/등요)를 잘못 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도공들 사이에서 노보리가 너구리로 잘못 전달되어 불리게 된듯하다. 뿐만 아니라 목공을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괴목도 잘못되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느티나무나 괴상하게 생긴 나무를 괴목이라 불렀는데, 우연찮게 나무에 관련된 서적을 읽다가 괴목은 한자로 회화나무괴(槐)를 써서 표기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작가와 괴목을 가지고 누가 맞는지 한참을 옥신각신 한 기억이 있다. 괴목은 회화나무를 이르는 것이 맞고, 느티나무도 괴목이라 하지만 한자로 표현하면 기목이 맞는듯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상대편은 목공예를 전공한 교수니 다들 그분의 말을 믿었다.

도자공예에서 흙의 점성과 공기를 빼내는 작업도 `꼬막'이라 들었는데 알고 보니 `꼬박'이 더 적절한 표현인 것도 확인되었다. 이후부터 전공한 분에게 듣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관련된 정보를 확인하고 전하는 습성이 생겼다. 처음 공예관에 입사하고 공예에 대해 알게 되면서 관련된 용어를 습득하게 되었다. 지금서 생각하면 들은바 그대로 전했던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창피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사실인 것 같은 상식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정보들과의 연관성에서 좀 더 정확한 것을 알아가기에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

나름의 생각이 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기에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합일점을 찾아간다. 하지만 나름의 생각이 아닌 주변의 정보에 의한 앎이 기정사실로 되어 무리하게 강요되는 듯한 일이 적지 않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사실 확인을 하고 숙고한 끝에 내 놓아도 될 것을, 나름의 앎이 불변의 사실인 듯 스스로 주문을 걸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이 그렇다. 요즘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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