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념물, 그 기록의 엄중함
대통령 기념물, 그 기록의 엄중함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3.19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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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부국장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법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에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 표지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청렴이 대한민국을 바꾼다'는 한글표기 밑에 `이천십이년가을 이명박 대통령'이란 자필 휘호가 문제화되면서 표지석 철거를 요청하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청렴연수원 입구에 설치된 이 표지석은 지난 2012년 10월 연수원의 청주 이전을 기념하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각종 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과 `청렴'을 강조한 표지석의 매치는 극과 극의 부조화란 지적이다.

더구나 청렴연수원은 국내 첫 청렴 전문교육기관으로 만들어져 공직자들의 부패방지와 국민권익 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임을 고려할 때 철거의 당위성도 힘을 받고 있다. 이처럼 시민들의 표지석 철거 요청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전 대통령의 사법적인 판단이 내려지면 철거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표지석 철거야 시간문제겠지만 역사로 새긴 기념물의 기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기념물 논란은 이 전 대통령에 한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남북분단이란 지난한 현대사를 거쳐온 우리 역사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독립운동가로 칭송받다 친일 행적이 드러나면서 정춘수 동상이 시민들의 손에 끌어내려 지기도 하고, 문단의 최고봉이 친일파 시인으로 낙인이 찍히면서 서정주 관련 기념비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대통령 기념물도 논외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권력이 부여된 만큼 기록의 엄중함은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를 타고 언제가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찾아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인 광화문 현판은 시대 청산을 이유로 2007년 내려졌고, 현충사에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은 2017년 덕수이씨 충무공파 이순신 가문의 15대 맏며느리 최순선씨가 현판 교체를 문화재청에 요구하며 논란을 빚었다. 2016년 전북 김제시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방문 기념비가 과도하게 미화됐다며 철거 요청이 있었고, 2017년에는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흔적 지우기로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설치한 표지석 철거 요구가 잇따랐다.

기록으로 역사의 보물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그 기록으로 철거 대상이 된다. 현판이나 표지석 철거 요청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대통령들의 궤적에 따라 기념물 하나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옛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죽어서까지도 회자할 인물이 되기 위해선 명예를 중시해야 한다는 묵직한 비유가 담겨 있는 말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내포한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속담의 적용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최고의 지도자로 꼽는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조선의 르네상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픈 몸을 끌고 초정행차에 나서면서도 백성에게 민폐가 될까 걱정하고 걱정했던 임금의 진심에 있다. 겸양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조선의 선비들 역시 스스로 높이는 문화에 인색했고 늘 경계했다. 현대사회가 적극적인 자기 PR 시대라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역사적 평가와 기록의 엄중함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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