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박물관에서
시간 박물관에서
  • 김기자<수필가>
  • 승인 2018.03.1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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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기자

정동진 시간박물관이다. 시간이라는 의미가 어떤 모양으로 나열되어 있는지 상상만으로도 호기심이 가득해 왔다. 그곳에 들어서니 시계의 역사관이라 느낄 만큼 진귀한 시계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시간 박물관이라 칭했을까. 시계와 시간의 두 단어가 상응하는 관계는 어떤 모양으로 우리의 삶에 밀접한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박물관은 멈춰 있는 기차로 꾸며져 있어서 더 특별했다. 그곳은 시계발달의 원천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온갖 시계들이 나열되어 있는 가운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를 만큼 분위기마저 한몫하고 있었다. 박물관이라는 매체에서 사물을 통해 역사를 가깝게 이해하도록 꾸며놓은 듯했다. 그러나 시계와 시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에 빠져 들어가고야 말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의 가치까지도.

문득 깨달았다. 시계가 움직이면서 시간은 생산성을 발휘해 낸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마저 그 과정을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오묘함이 참으로 대단하다. 여기에서 느낀 것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이었다. 시계를 만들고 시간을 아우르고 슬픔보다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아서다.

박물관 견학은 그렇게 막바지에 이르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안내원의 부름도 있었지만 처음과 달리 한참을 서 있기로 했다. 세계시계명장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에 대해 안내를 받으면서부터다. 고든 브라듯 이라는 미국의 동작 조형물 작가가 만든 시계인데 전 세계에 24점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인간과 시간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표현해 놓은 시계인 만큼 그 앞에서 석고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곱 개의 동작인형이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시계가 살아있기에.

마치 인생살이가 저런 것일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인형이 있었다. 인형이 톱니바퀴의 힘으로 정상에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다시 오르는 거였다. 어찌나 애처롭던지 한참을 바라보아야 했다. 바로 그것이 우리 현재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끝내 멈출 수 없는 시간을 따라 저마다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것 같았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실망과 좌절을 느낄 수도 있으며 의지와 용기를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그 하나의 인형만을 평가하고 싶지가 않다. 나머지 여섯 개의 동작인형이 부지런히 움직여주어야만 시간이 만들어지면서 세상이 움직인다는 거였다. 어찌 보면 고달프고 어찌 보면 협동하는 아름다움의 현장 같았다.

철학적으로 표현한 작품, 그랜드파더 세븐맨 클락(Grandfather Sevenman Clock)은 관점에 따라 우울한 시계, 또는 활기찬 시계라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세상의 양면을 보았다. 그리고 사물을 통해 우리의 생각이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인다는 것도 알았다. 누구나 그러하듯 긍정을 택해야만 삶의 무게가 가벼우리라 믿는다. 때로 내 한켠의 삶이 톱니를 돌리는 일처럼 고달프다 해도 실족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보다 효율적인 생각으로 시간을 사용하며 아껴갈 것이다. 내 가슴에도 귀한 시간박물관 하나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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