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소망’만큼은 이뤄주자
‘MB의 소망’만큼은 이뤄주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3.18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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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되던 날 포토라인에 서서 “역사에서 이번 일이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들어간 검찰에서 그는 혐의 대부분을 잡아뗐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임기 중에 직권을 남용하고 불법과 부정을 자행한 대통령은 자신이 마지막이 돼야한다”는 속죄형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가 말한 `마지막이 돼야 할 것'은 정치보복을 당하는 전직 대통령, 아니면 억울하게 검찰에 불려다니는 불운한 전직 대통령일 공산이 높다.

자신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는 이 전 대통령의 발언에는 25년 전의 한 장면이 새삼 오버랩된다. 1963년 8월 강원도 한 군부대에서 열렸던 박정희 당시 육군대장의 전역식이다. 5·16 쿠데타를 일으켜 국권을 장악한 지 2년여만이었다. 그는 이날 전역사에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장황하게 열변한 후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다시는 이 땅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혼란과 도탄에 빠진 조국을 재건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을 위해 군복을 벗어야 하는 불운한 군인은 자신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는 근사한 역설이었다. 그는 이날 바로 공화당 당사를 찾아 입당원을 내고 합법적 권력 장악에 나서 그해 12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결과적으로 군대를 권력찬탈에 동원하고 대통령에 오른 불운한 군인은 그에게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밑에서 쿠데타와 민정을 가장한 정권장악 과정을 충실하게 학습했던 후계자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정축재까지 감행했다. 군정의 종식은 군부의 자각과 선언이 아니라 6월 민주항쟁으로 불리는 시민의 저항에 의해 완결됐다.

다시 이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인정해야 할 것은 자신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는 그의 말이 백번 옳다는 점이다. 그가 국민과 국가에 과오를 범한 대통령인지, 본인의 주장대로 정치보복을 당한 대통령이나 측근들의 모함으로 죄를 뒤집어쓴 대통령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유형이 어떻든 검찰에 발을 들이는 대통령이 더 이상 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우리가 풀어야 할 엄중한 숙제이자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종의 청원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다섯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4명 중 퇴임 후 검찰에 불려가지 않은 대통령은 한 명도 없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원 특활비와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부인까지 검찰에 불려갈 판이다. 매번 국민들이 상처를 받고 정치권은 대오각성을 외쳤지만 현실은 뒷걸음질만 해온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자택에서 측근들에게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며 “성찰의 계기도 된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무에서 일탈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다는 회한과 자책의 의미로 해석된다. 직권남용의 유혹을 떨쳐내며 대통령 직분을 수행할 인물이 못됐다는 고백에 다름없을 터이다. 한편으로는 주인인 국민에게서 잠시 위탁받았을 뿐이라는 겸허한 자세로 집행하기에는 대통령으로서 행사할 권력이 무한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대통령의 도덕성까지 관리할 시스템의 완비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슈가 되고 있는 개헌 논의의 핵심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수술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발의하겠다며 내놓은 개정안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4년 연임제와 감사원 독립, 사면권 제한 정도로 고질병이 돼버린 대통령 일탈을 제어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제 근간을 유지하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규제할 수 있는 촘촘한 법망을 헌법에 담아내야 한다. 불운한 군인이 다시 나와 역사에 흠집을 낸 것은 자신이 마지막 불운한 군인이기를 원했던 불운한 군인이 불운한 군인이 번식할 제도·정치적 토양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들어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전직 대통령 수사전담부를 설치하자는 얘기도 들린다. 퇴임한 대통령은 특정한 혐의가 없더라도 의무적으로 임기 중 처리한 주요 정책, 인사, 사면 등에 대해 합법성과 도덕성 검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만 들을 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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