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식구
새 식구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8.03.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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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안희자

입춘 무렵 우리 집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작고 여린 몸에 연둣빛을 띠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옹알이하는 아기처럼 오목오목 잎을 열고 있는 다육식물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고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키우던 난이 죽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애지중지 여기던 자식을 잃은 것처럼 허전했었다. 그 자리에 다육이가 채워졌다.

다육이와 함께하는 사이 내 삶은 봄처럼 싱그러웠다. 온 정성을 다육이에 쏟았다. 갓난아기에 젖을 물리듯 수시로 물을 주고 약하다고 가둬 키웠다. 틈틈이 다가가 교감했고, 물과 거름을 넘치도록 주었다. 하지만, 여린 잎이 하나둘씩 눈물처럼 떨어졌다. 아마도 주변 환경이 낯설었나 보다. 사막식물인지라 따사로운 봄볕이 사무치게 그리웠을 터이다. 볕 좋은 창가로 옮겨줬다. 몇 날을 봄볕에 몸을 데우더니 통통하게 살이 올라 키도 손가락 마디만큼 자랐다. 목마를 때 흠뻑 물을 주면, 달게 마셨다는 듯 생긋 웃는 것 같다. 나날이 변해가는 다육식물에서 오래전 고향집 풍경이 겹쳐진다.

그해 봄, 시골 친정집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고운 한복에 복사꽃 같은 새색시가 버선발로 들어섰다. 한 사람이 결혼하여 며느리로 인정받는 날, 나는 남동생의 반려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둘째 올케는 체구는 작아도 성품이 온화했다. 오랫동안 부모님 그늘에서 살다가 낯선 타향으로 시집와 정착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처음에는 식구들 곁에서 물에 기름처럼 겉돌았다. 그때마다 나는 올케의 손을 잡아주고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런 내 마음이 올케에게도 전해졌던 걸까? 올케는 시누이 중에서도 유독 나에게 살갑게 대했고 서로 잘 통했다. 명절이면 먼저 달려와 바쁜 일 끝내놓고 우리 집에 인사 오곤 했다. 내 생일을 기억하고 예쁜 그릇이며 귀한 선물을 보내왔다. 지금까지도 정이 도탑게 이어지는 건 서로 아낌없이 주고받기 때문일 거다.

남동생은 대학졸업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지만 IMF로 말미암아 가세가 기울었다. 빚에 쫓기면서 살던 집마저 잃었고, 보다 못한 올케는 돈을 벌어야 했다. 올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불평도 없이 자식들 키우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일이 있다. 그즈음 나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올케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서 며칠 묵고 가라며 당부하였다. 허름하고 좁은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울컥했다. 올케는 아픈 나를 위해 없는 살림에도 고기반찬을 밥상에 올렸다. 그때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먹을 수가 없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올케는 출근길에 들러 내 남편 도시락까지 살뜰히 챙겨 가져왔다. 그 고마움을 어찌 잊으랴. 퇴원하던 날, 나는 올케에게 봉투를 쥐여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올 설 명절에도 동생 내외가 찾아왔다. 이제 올케는 우리 가족으로 단단히 뿌리내렸다. 어느덧 새 식구가 묵은 인연이 되어 나와 함께 늙어간다. 속내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시집에 뿌리내리기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그동안“애썼다”고 올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산다는 것은 서로 아픔까지도 보듬어주고 감싸주는 일이다. 사랑으로 키운 다육식물처럼 우리 삶도 누군가의 따스한 마음을 보태준다면 낯선 환경에서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남이 어우러져 가족으로 산다는 건 거저 얻는 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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