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굿판을 거두자
저주의 굿판을 거두자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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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미투 운동에 대해 글을 쓰려니까 한 친구가 극구 말린다. 요즘같이 민감한 시기에 그런 위험한 주제를 함부로 다루었다간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며 손으로 목을 그어 보인다. 특정 종교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뜨거운 게 그 문젠데 경험이나 식견도 없이 글을 썼다가 필화를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단다. 펜이 꺾이고 입이 막히면 더 쓰고 더 떠들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 아닌가. 함부로 떠들지 말라는 친구의 만류와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이 묘하게 오버랩 되어 기어이 몇 줄 쓴다.

며칠 전 배우 조민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주대 교수로 재직 중 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경찰 수사가 진행되자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전해진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폭로는 입에 담기도 혐오스러운 것들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를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고인에겐 그 과정을 감당할 용기가 부족했다. 공개되지 않은 유서에는 후회와 자책, 피해자들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들어있다고 한다.

조 씨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극단으로 갈린다. 그의 혐의가 전부 사실이어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는 아니다, 이제 조민기는 배우가 아닌 성범죄자로 영원히 남을 텐데 지옥에서라도 죗값을 받으라며 그의 죽음에 침을 뱉고 저주하는 건 지나치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그의 자살은 일종의 혐의 부인으로써 피해자와 고인의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비겁한 행동이다, 진실을 피하려 했던 성범죄자의 선택이므로 전혀 슬프지 않으며 오히려 화가 난다는 목소리가 팽팽하다.

이와는 별개로 일부의 분노가 가해자 가족을 겨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조 씨가 저지른 성추행 기사가 처음 보도되자 유학 간 당신 딸도 미국 교수에게 똑같이 당해보라는 식의 댓글들이 달렸다. 또 다른 가해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고은 시인, 영화배우 조재현의 기사에도 가족에 대한 저주가 등장한다. 도를 넘은 대중의 분노와 저주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2차 피해와 다를 바 없어 위험하다. 합리와 이성을 벗어난 과도한 광기에 대중은 피로감을 느끼고 여론의 동력도 떨어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투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내 아닌 여자와는 밥도 같이 먹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미국 펜스(pence) 부통령의 생활철학을 딴 `펜스 룰'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남성의 비뚤어진 성의식은 반성하지 않고 여성의 사회 참여만을 배제하려 해서 엉뚱하다. 이 또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과도한 분노와 저주 때문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나뿐만 아니라 가족도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과 경계가 여성들을 점점 멀리하게 한다. 미투가 펜스(fence)를 치게 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미국에서 시작된 광풍이 잦아들 줄 모른다. 문화예술계를 거쳐 정치권으로 옮겨 붙은 불씨가 어디로 튈지 그 불기둥이 얼마나 클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 내일은 또 어떤 인물이 미소 띤 가면을 벗고 추악한 색마의 모습을 드러낼지 뉴스를 보는 게 두렵다. 지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참에 남성들의 성의식이 바로잡히길 바라지만 가해자에 대한 합리적이고 절제된 분노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방향을 잃고 정도를 넘어선 분노는 또 다른 가해라서 공감 받지 못할 것이다. 딱 그만큼만 분노하고 저주의 굿판은 거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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