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환상통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8.03.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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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그이가 홀딱 빠졌다. 온통 그 작은 공 생각뿐이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매끈한 곰보공이 그이를 홀려버렸다. 일어나자마자 틀고 퇴근하기가 무섭게 틀어놓는 채널도 골프다. 채널고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지도 오래고 뉴스도 한참 되었다.

그뿐이랴. 방송에 나오는 프로들의 레슨을 보면서 휘두르는 골프채는 공포수준이다. 거의 매일 연습장에 나가고 그것으로도 양이 차지 않아 스크린 골프장에도 간다. 그이의 열정을 온통 뺏어간 작은 공을 외면하려 해도 조금씩 관심이 간다. 그이는 볼이 홀컵에 들어가는 순간, 땡그랑 소리에 절정에서 맛보는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 쾌감이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골프장에 다녀와서 끙끙 앓는 그이에게 보다 못해 잔소리를 한다. 무리하지 말라는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눈치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 힘들 턱이 없다. 팔마다 파스가 도배되면서까지 쉬지를 않는다. 진통제를 먹어가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홀릭이다. 공에게 질투가 날 지경이다.

지금껏 저토록 무언가에 빠져서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이가 쉰이 넘어 무엇에 정열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어쩌다 구시렁대기는 해도 그이의 열의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이는 자신만의 포즈를 찾아야 한다고 자세를 날마다 가다듬는다. 더 부드럽게 자연스런 스윙을 위해 거울 앞에서 열심이다. 골프의 구력이 9년이라지만 공백을 빼면 2년차다. 스무 해를 넘게 글을 써온 내가 부끄럽다. 그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글에 매달렸으면서 아직 나만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글이라는 신병을 앓았다. 신을 모셔야 아픈 몸이 낫는 무당처럼 글신을 온전히 내 안으로 받아들여야 끝나는 속앓이였다. 사주를 받아들이듯 주저 없이 작가라는 등용문에 입문했다. 나에게는 무병의 내림굿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문을 들어선 순간, 나의 들들 끓던 신열은 내리고 답답했던 가슴이 트였다.

신을 섬기는 무당은 춤으로써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여 탈혼의 과정을 거쳐 신과 접하게 된다. 기도로서 끝없이 몸과 마음을 닦아야 맑은 점사가 나오고 교만하지 않아야 신과의 접신이 잘 된다고 한다. 무의(巫儀)를 게을리하면 아픈 병이 되걸린다는 것이다. 맨 처음 신을 모시는 일보다 떠나지 않게 하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글신은 접신으로 일러준다.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 스스로 제 색을 입힐 때, 거기에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를 겸허히 낼 때, 내 안에 편히 안주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접신은 오랜 사유가 있어야만 찾아온다. 깊은 사고로 마음을 다듬어야 만이 신은 점사인 영감을 내린다.

처음에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밤을 새워도 좋았다. 수없이 퇴고를 거쳐도 자신이 없을 만큼 글에 겸손했었다. 그런 내가 서서히 변해갔다. 언제부턴가 자신만만하여 건방을 떨었다. 작가라는 허울만을 쓰고 거만해지기까지 했다.

마음이 비어 있어야 되는 나의 접신은 점점 주파수가 맞지 않고 있다. 자꾸만 시도해보아도 잡음소리만 들린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잡념이 가려 전파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또 열병이 찾아왔다. 재발이다. 나는 지금 살을 찌르는 성장통, 환상통(幻想痛)을 앓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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