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지인
친구와 지인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3.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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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현대인들은 자신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나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수북이 저장해 놓고 삽니다. 작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지만 정작 외롭고 쓸쓸할 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라치면 딱히 걸만한 사람이 없어 망연자실합니다. 지인(知人)은 지천인데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흉허물없는 친구(親舊)가 없기 때문입니다.

외딴섬처럼 사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지요. 아시다시피 지인은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을, 친구는 가깝게 오랜 사귄 사람을 이릅니다. 설립(立) 밑에 나무 목(木)과 옆에 볼견(見)이 있는 친(親) 자는 나무 위에 올라 먼 길 떠나는 자식을 애타게 바라보는 어머니 모습을 형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 같은 간절함으로 소통하고 우정을 나누는 이를 친구라 부르지요. 그러므로 그런 친구를 둔 이는 참으로 복인입니다.

각설하고 세상에 짝사랑은 있어도 짝우정은 없습니다. 친구는 쌍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먼저 다가섰기 때문이며, 서로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기 때문이며, 내 아픔보다 상대의 아픔을 보듬어 주려했기 때문입니다. 내 자존심보다 친구의 자존심이 먼저였고, 내 가치관보다 친구의 가치관을 우선했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였고, 순수였고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런 친구를 둔 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자산이자 자양분이니까요. 문제는 어떤 부류의 지인이냐 와 지인을 얼마만큼 우군으로 만들었냐 입니다. 지인이라고 모두 내 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 편이라고 믿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허다합니다. 친한 척하면서 허점과 약점을 캐는 지인도 있고, 걸림돌이 되거나 복병이 되는 지인들도 종종 있으니 말입니다.

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고약한 지인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걸 후회막급인 지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럼에도 지인이 많은 건 상찬 받을 만합니다. 대인관계가 좋다는 반증이자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표징이니까요. 지인이 많은 사람을 일러 흔히들 마당발이라 하지요. 정관계에 또는 사회 전반에 인맥이 많아 이리왈 저리왈 하는 사람 말입니다.

어쨌든 친구와 지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고, 하늘과 땅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인 중에서 친구가 나오기 때문이며, 지인이라고 하지만 속속들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라고 다 같은 친구가 아니듯 무늬만 친구인 사람이 있고, 좋을 때만 친구인 사람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덕 볼 일이 있을 땐 간이라도 떼어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사람도 단물이 빠지면, 더는 덕 볼게 없다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 몰라라 하니까요.

법정 스님이 말씀하기를 `시간을 죽이기 위해 찾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시간을 살리기 위해 만나는 친구야말로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 사이다.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메아리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했습니다.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고,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어야 진정한 친구'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친구는 사랑입니다. 친구는 영혼의 메아리입니다. 친구가 없는 분은 지인을 연인처럼 섬기세요. 그러면 친구가 됩니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대의 진정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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