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바람꽃이냐? 나도바람꽃이다!
너도바람꽃이냐? 나도바람꽃이다!
  • 우래재<전 중등교사>
  • 승인 2018.03.1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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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 우래재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물러갈 모양이다. 사진기 배터리 충전기를 어디 두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심했던 꽃 맞이 산행을 떠났다. 가까운 남쪽에서 엊그제 꽃소식을 전해왔으니 오늘쯤은 부지런한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겠지?

몇 년 전 너도바람꽃을 보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을 달려 멀리 남쪽 황전이라는 시골까지 다녀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 하지 않던가? 가까운 곳에 두고 멀리까지 찾아갔으니. 산마루 잔설이 채 녹지 않은 계곡에서 처음 만난 너도바람꽃! 찬바람 맞으며 핀 부지런함에 놀라고 나를 낮춰서 엎드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은 크기에 또 한 번 놀란 꽃이다. 그 작은 생명체들의 기막힌 생존전략이 놀라운 꽃이다.

대부분의 바람꽃이 그렇듯 이른 봄에 남들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다른 식물들의 잎에 햇빛이 가리기 전에 빨리 광합성을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넓고 하얀 것은 꽃잎처럼 보이지만 꽃받침이 변한 것이다. 실제의 꽃잎은 조그만 꿀샘처럼 변해 곤충을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열매를 맺기까지 단 반년 정도 살고 가는 바람꽃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꽃잎을 만드는 영양분을 절약하고 꽃가루받이를 유리하게 하기 위한 바람꽃의 기막힌 생존전략인 것이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에 땅속에 작은 구근을 만들어 자신도 살아남아 내년을 기약하니 작지만 얼마나 똑똑하고 놀라운 식물인가.

이렇듯 놀랍고 똑똑한 바람꽃에 `너도'라는 말은 왜 붙었을까?

보통 식물 이름에 `너도'나 `나도'라는 말이 붙은 것은 기본종과 비슷하나 과나 속이 다른 경우 쓴다. 기본종이라 할 수 있는 바람꽃은 구근이 굵고 여름에 꽃이 피고 바람꽃속에 속하지만, 너도바람꽃은 구근이 작고 이른 봄에 꽃이 피고 너도바람꽃속에 속한다.

식물 이름에서 `너도'와 `나도'는 큰 차이는 없지만, `너도'는 꽃이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바람꽃 닮았으니 `너도 바람꽃이라고 해라'하는 것 같고, `나도'는 당당하게 여러 송이 꽃을 달고 키도 크니 `나도 바람꽃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듯하다.

몇 년 전 막내 등굣길에 가벼운 사고로 응급실에 들렀을 때 오래전 제자가 알아보고 인사를 하였다. “너 의사가 되었구나!”말끝에 또 다른 여자애가 와 인사를 한다. “너도 여기 의사니?”얼마나 기분 나빴을까? “너도 의사가 되었구나!”이랬으면 좋았을걸. 우리말에 `어'다르고 `아'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이젠 `너도바람꽃'이냐? 보다는 `너도바람꽃'이구나! 이렇게 말을 걸어야지.

여러 생각 끝에 도착한 곳.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계곡. 너도바람꽃 피기는 너무 일렀나 보다.

너도바람꽃에 바람맞았다. 바로 차를 돌려 찾은 곳. 변산바람꽃이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카메라 없이 눈으로 만 보니 더 잘 보인다. 이번 주말이면 가까운 곳에서도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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