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마음의 눈
  • 박윤희<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03.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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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박윤희<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눈이 버근하다. 하루 종일 돋보기를 끼고 컴퓨터 작업을 하려니 눈이 뻑뻑하고 빠질 것 같다. 집안 내력으로 눈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지는 건 당연한 일임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다.

흰머리가 점점 늘면서 염색을 안 하고 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새치라고 우기며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인정할 때가 된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희어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나 일하는 여성으로 자기관리를 못 하는 것으로 보이기 싫어서 염색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휴대폰의 글자가 뿌옇게 보였다. 염색약이 독해서 더 빨리 시력이 떨어진다는 속설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전화벨이 울리면 휴대폰에 글자가 보이지 않아서 대충 글자 수를 보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일쑤다. 나름 방법을 찾는다고 하였지만 글자가 정확히 보이지 않아서 여러 번 실수하고서야 다초점안경을 맞추고야 말았다. 막상 안경을 맞추고도 불편하다는 이유로 잠깐 쓰고 가능하면 일상생활 할 때는 그냥 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눈에 뭔가가 잔뜩 낀 것과 같은 답답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앞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자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늘게 되니 만사가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잃어가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남에 따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고 성격도 무뎌져 가며 포기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터득한 후 보지 않고 화장품을 흔들어서 스킨과 로션을 구별하는 내 모습에 혼자 빙그레 웃는다. `환경이 바뀌면 나름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되는구나!'눈이 어두워지면서 다른 감각들이 발달한다는 말을 실감 나게 한다. 이젠 시야의 불편함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몸살이 나서 앓아 누워 있어도 방바닥에 있는 머리카락이 눈에 확 들어오면 당장 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이처럼 너무 잘 보여서 신경 쓰였거나 예민했던 부분도 있었던 나를 때론 보이지 않아 편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렵게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안정하게 되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일은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 같은 성격도 유순해지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니, 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실과 바늘을 늘 가까이에 두셨다. 빨래를 하고 나면 구멍 난 양말을 꿰매고 계시거나 옷에 떨어진 단추를 달고 계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럴 때면 바늘귀를 꽂는 일은 막내인 내 몫이었다. 어머니의 바늘귀를 꽂아주던 어린 소녀는 어디로 가고 어머니의 모습인 내가 앉아 있었다. 요즘에는 양말이 구멍 나면 버리고 단추를 다는 일은 수선 집에 맡기게 된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맡기게 된 것이 이젠 전문가의 손길이 아니면 옷이 망가지기 일쑤이다. 나의 어머니는 가족들의 옷을 꿰매느라 돋보기를 끼고 바늘귀를 꽂았지만 어머니 나이가 된 나는 컴퓨터에 앉아 돋보기를 끼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노안은 먼 곳의 것은 잘 보이는데 가까이에 있는 것이 더 안 보인다. 그래서 안경이 없이는 휴대폰이나 책을 볼 수 없어서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를 마음속에 새기며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감각을 기르고자 노력하련다.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다. 이제 집안 구석구석 깨끗하게 할 자신은 없다. 그저 대청소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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