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시간
바람의 시간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8.03.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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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오래된 동네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한 노인이 졸고 있다. 한때는 동네에서 손기술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보일러를 고쳐주기도 하고 고물도 주워다 팔며 부지런하게 움직이던 분이셨다. 특이하게도 언제나 한 손에 막대기를 들고 휘적휘적 걸어다니셨던 그 노인은 우리 집 앞을 지나 때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으셨다. 그냥 조용히 지나가시면 좋을 텐데 당신을 보고 짖어대는 우리 집 개와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가만 지켜보면 재미로 그러시는 듯도 했다.

세월은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도 무력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녔다. 어린 아이는 세월이 빨리 가길 바라고 노인은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릴 때는 그리도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나이가 들면 왜 그리 화살 같이 빨라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욕심과 미련이라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과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을 칭하는 것일까. 작금의 세태 앞에서 다시금 여러 삶을 돌아보게 된다. 어떤 이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권력으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그동안 남자들에 억눌려 살았던 남자들에 대한 여자들의 반격이라고도 한다. 예술계의 거장들과 정치계의 거물들, 교육계나 종교에서 존경받고 우러러 받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뒹구는 비 맞은 낙엽처럼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그렇게 무너지는 데는 그동안 그들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던(무시해도 되었던) 그 약하디 약한 여자들의 역할이 컸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담대하게 만들었을까. 그동안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아내(안해:안쪽의 사람), 안사람, 내자, 애 엄마, 마누라(`마마'의 방언), 여편네, 계집'이란 말로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여자가 대통령도 되는 세상에 누가 무시하느냐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뽑은 그 대통령이 부정을 저지르고 권모술수의 죄가 드러나자 많은 남자들은 `역시 여자라서 그래'라고 하고 다시 본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죄 앞에 여자 남자의 구분이 어디 있을까. 죄에 대한 평가는 남자와 여자, 지위의 높고 낮음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부는 크고 작은 바람이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이끄는 바람의 길이 되길 바란다.

봄, 시간을 따라 공간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바람은 지금 바쁘다. 구멍가게 평상 위에서 자울시는 노인에게도, 그 앞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도 봄바람은 한참을 머물다 갔다. 그리고 우리 집 화단에도 어느새 다녀갔는지 복수초가 노랗게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고 있다. 부디 모든 이의 마음속에 따듯한 봄바람이 스며드는, 그래서 꽃길을 함께 걷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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