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향녀와 혁명으로서의 미투
환향녀와 혁명으로서의 미투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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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늘 검찰에 소환되는 일은 사필귀정이다. 따지고 보면 절대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죄를 지었다는 의혹이 있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든 가릴 것 없이 죄의 유무와 정도에 따라 심판을 받고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가 상대적으로 사회 지도층이면서 그 권력을 악용해 도덕적 질서를 훼손했다면 더욱 준엄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4번째 검찰 소환이라는 수식은 그래서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조금이라도 우리가 불행한 국민이라고 느낀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처방해야 한다.

나는 요즘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을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을 마침내 송두리째 없앨 수 있는 가장 큰 혁명으로 단정한다. 미투운동은 촛불혁명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 촛불이 국정농단과 대통령의 부정, 무능함을 중단시키는, 지극한 정치적 현상이었다면 미투운동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인간사회에서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차단시키겠다는 결연한 인간성 회복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화냥년'이라는 욕이 환향녀(還鄕女)에서 비롯된 것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환향녀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에 돌아온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왕의 나라가 저지른 잘못으로 까닭 없이 이국땅에 끌려간 것도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겨우 돌아온 고향은 이들 여성들에게 정절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자결과 이혼을 강요하며 손가락질을 해댔던 비극의 역사가 우리에게는 있다. 심지어 한양에 이르기 전에 위치한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인조의 갸륵한(?) 조치가 있고, 이를 기화로 이 일대가 홍제천의 은혜, 즉 홍은동으로 불리게 됐다는 야사가 있다.

여성을 남성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는 일은 이 밖에도 수많은 여성수난사로 겹치면서 지금껏 계속돼 왔다. 일제치하 권력에 의해 납치되어 성폭력과 전쟁에 굶주린 남성들의 성노예가 되어야만 했던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인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엄연한 현재 진행형이다. 미 군정시절부터 비롯된 `양공주'는 미군의 환심을 사기 위한 국가와 국민들의 암묵적 허락에 따른 비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진대 당사자인 여성에 대한 손가락질과 그 자녀들에 대해 혼혈이니, 튀기니 하며 노골적으로 학대했던 멸시는 또 얼마나 처절했던가. 그뿐만이 아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이코노믹 애니멀로 불렸던 일본인의 쾌락과 (나라의)돈벌이를 위한 기생관광의 희생 역시 이 땅의 힘없는 여성들 몫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마침내 압제와 폭력, 차별과 학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외침이 미투운동으로 번지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근본적인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의 오랜 역사를 통해 나라와 권력이, 그리고 절대적 힘의 우위에 있는 남성과 사회 전반의 조직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여성들을 절대로 보호해주지 않는 세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나 모르는 척 했다.

그리고 그런 억누름과 치욕적인 폭력과 희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여태껏 반성에 망설이는, 그리하여 미투운동이 그저 한때의 유행처럼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옹졸한 남성 세계와의 불안한 조우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온갖 음모론과 (여성을)상대조차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거나, 간격과 벽을 만들어 단절하는 치졸함마저 서슴지 않는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

미투운동이 절대로 중단될 수 없는 이유이고, 피해 여성들이 받고 있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평생을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치욕에 상응하는 단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을 것이다. 법의 허점을 찾아내 집요하게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리고 정치보복 운운하며 피해자와 희생자 코스프레를 할 것이다. 그러나 변명은 필요없다. 미투가 혁명으로 승화되어야 하는 이유도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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