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그네
어우렁그네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8.03.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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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고운 요정 둘이 요람에서 놀다 그 작은 채롱을 벗어났다. 방문 틀에다 그네를 매달아 주었더니 네 활개를 파닥이며 좋아한다. 어느새 놀이터에서 바람 소리 내며 그네를 탄다.

지효랑 지율이 놀이터에 가면 그네를 타야 놀이의 끝을 본다. 오종종 모여 차례를 기다리는데 안달이 나면, 할미를 세워 두고 미끄럼틀을 한바탕 타고 온다. 마지못해 그네에서 내리는 아이도 미련이 남고, 다른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곁눈질로 마음을 두고 있다.

차례가 왔다. 쌍둥이 그네를 타자고 중재에 나섰다. 지효가 먼저 그네에 오르고 힘이 좋은 지율이 성큼 따라 오르다 균형을 잃고 땅으로 내리박혔다. 그 힘에 지효가 밀리고 그네가 푸르르 떨렸다. 놀란 지효가 투정을 부리고 툭툭 털고 일어난 지율이 찔끔 나온 눈물을 훔치고 다시 올랐다. 지율이 엉덩이를 빼고 발을 구르며 배를 쑥 내민다. 지효의 무게를 감당하려니 한 뼘을 나가는듯하다 엉거주춤한다. 지효도 제 깐엔 잔뜩 힘을 주고 구르는데 제자리걸음으로 맴돈다. 지율이 얼굴이 발개지도록 발을 구른다. 요령을 터득하고 조율하더니 슬금슬금 나아간다.

힘차게 날아오른다. 고운 나비 한 쌍이 하늘에서 어우렁그네를 탄다. 내 눈은 그네의 꼬리를 붙잡고 근심을 놓지 못하는데 웃음범벅이 된 아이들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비로소 조바심을 내린다.

`그래, 산다는 건 지효랑 지율처럼 어우렁그네를 타는 일이지.'

부부로 살아가는 일은 전생에 쌍둥이였던 두 사람이 칠천 겁의 오작교를 건너와 현생에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일 거다. 그래서 이란성 쌍둥이가 한 그네에 올라 마주 보고 어우렁그네를 타는 일이다. 하늘이 열리고 세상이 생긴 이래 그의 갈비뼈에서 나온 그녀가 생육의 신성한 섭리를 부여받고 함께 이루어 가는 세계, 그 신세계의 주역이 되는 일이다.

혼자서는 외로워 둘이 되었다는, 둘이 되었더니 셋이어야 좋고 넷이어야 완성일 것 같다는 며늘아기가 홍조 띠는 모습에서 그 인연의 고리를 짐작해 본다.

아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는 날 열렬히 응원하였다. 가시밭 같은 어머니의 땅에서 내가 살았듯이, 아버지의 땅에서 그가 목울음 삼켰듯이, 그래도 단단히 뿌리내리고 살았듯이 꿋꿋이 살아가라고 기도하였다. 그래도 가슴 한쪽이 아려 비손한 뒤, 화촉을 밝히고 내려오다 젖은 눈가를 들켰다.

부부로 살아가는 일은 어우렁그네를 타듯 즐겁다. 어우렁그네를 타듯 불안하고 흔들린다. 자칫 추락할지도 모르는 그네의 속성을 타고 올라 흔들리기도 하지만, 목표는 행복 지향적 삶이다. 지율이 곤두박질 친 그네에서 다시 올라 마주 보고 함박웃음 웃었듯이 조율의 천재가 되어야 행복한 것이다.

더는 버틸 수 없어 인내가 한계에 달하면 어우렁그네는 두려움이고 공포이다. 그 순간 그들은 해방을 꿈꾼다. 부단한 노력과 인내로 살쾡이 같은 삶을 마주하고 조율해 온 지금에야 우리는 곤두박질 칠지도 모르는 그네를 오른 어름사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지름길도 없는 어우렁그네에 올라 출발한 지 어언 40여 년의 길에서 비로소 너와 내가 하나가 되었음에 희열을 느낀다.

행여, 태풍가로에 서게 되거들랑 호흡을 가다듬고 지효랑 지율처럼 초심을 발판으로 조율하여 보기를, 다시 뛰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아이들이, 세상 모든 아내와 남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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