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에겐
아직도 우리에겐
  • 유지원<청주시 상당구 환경위생과장>
  • 승인 2018.03.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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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유지원

건강 백세시대를 맞아 60년 가까이 살아온 내겐 아직도 40여년이라는 세월이 남아 있다. 신발은 오래 신어 적당히 늘어져서 내가 신발에 길들여진 것인지 아니면 신발이 내게 길들어 편안한 것인지 모를 그런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도 오래 만나다 보면 내가 그들에게 동화된 것인지 아니면 친구들이 내게 물든 것인지 모를 묵은 친구가 편하고 좋지 않은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렸을 적 땟국 줄줄 흐르던 시절의 친구만 한 인생의 동반자도 없는 것 같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보여줄 것, 안 보여줄 것 다 보고 자랐으니 내가 감추고 싶은 흉터까지도 자연스레 모두 알고 있는 터라 굳이 감춰야 할 게 없다.

지금 내 나이면 결혼하고 30여 년 가까이 남편들과 함께 살았을 세월이지만 친구와 남편은 또 다르다는 것이 친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부부 사이도 남매처럼 무덤덤해지고 더 이상 결혼 전 같은 설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남편과 시댁, 아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도 풀어놓고 적당히 흉도 봐가며 공감을 얻어내기 가장 좋은 사이가 바로 코흘리개 적 친구들이다. 말이 날까 눈치 보고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내 어릴 적 친구들은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감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호들갑이고 자기가 키우는 화분에 꽃이라도 피면 사진을 찍어 보내며 “우리도 이런 꽃 같은 시절이 있었는데…”하며 웃음소리가 높아진다. 좋은 시를 읽으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유하며 서로의 감성을 이야기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혼자 읽기 아깝다고 친구들에게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 돈, 친구, 반려동물이라고 한다. 반면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이 아내, 부인, 마누라, 집사람, 배우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실제로 많은 친구를 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0% 정도 수명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만큼 친구들은 일생의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진심을 다해 소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어렸을 적 친구만 한 것이 없다.

늙어갈수록 자식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자식은 이미 우리와 살아온 세월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자식에게 기대하면 할수록 오히려 상처를 받는 것은 부모다. 믿었던 만큼 그 배신감은 쉽게 치료조차 되지 않을뿐더러 서운함은 타인에게 상처받은 것보다 더 아파서 쉽게 치료도 되지 않는다. 자식을 만족시키기는 쉬워도 부모를 만족하게 하는 자식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자식에게는 그저 기대치를 넘지 않을 적당한 관심과 거리를 둬야만 오히려 우리의 노년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핸드폰에서`카톡'소리가 연신 들린다. 인터넷에 요즘 볼만한 영화라고 뜨는데 검색해 보니 내용이 좋단다.

이번 주말 그 영화를 함께 보자고 꼬드기는 친구의 메시지다.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넘어가 볼까 생각 중이다.

백세시대를 산다는 요즘 족히 30년은 앞으로 함께 할 세월이 남아 있다. “우리는 아직도 청춘”이라고 말하며 이를 믿으며 살고 있다.

이렇게 나는 어릴 적 친구들이 가까이 있어 통장에 두둑이 저축해 놓은 것처럼 마음이 언제나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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