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를 들읍시다
`메멘토 모리'를 들읍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3.11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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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안희정은 충남지사 시절, 자신이 성폭행했던 수행비서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니 의견을 달지 말라. 니 생각을 말하지 말라. 너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투명하게 비춰라. 그림자처럼 살아라”. 그도 사회책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명언을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생각하지 않는 갈대가 되기를 강요했을까. 생각없는 인간을 만드는 것은 조물주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고서야 내 앞에서는 무생물이 돼야 한다는 지시를 인간에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도지사의 권력과 유력한 차기 대통령감이라는 세평에 도취한 그는 아랫사람의 인격까지도 소유할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연산군은 후궁인 장녹수에게 새집을 지어주기 위해 주변 백성들의 가옥을 철거하고 보상도 없이 쫓아냈다. 이 과정에서 3사(司)의 간관들이 부당함을 간언했지만 돌아온 것은 파직과 귀양이었다. 그가 즉위한 동안 이 같은 폭정과 전횡은 부지기수로 벌어졌다. 그 역시 생각하는 신하들을 기피했다. 그는 바른말 하는 신하들을 능상((陵上)의 죄로 다스렸다. `윗사람을 능멸한다'는 법조문에도 없는 죄목이었다. 연회에서 자신이 따라준 술을 흘린 대신도 능상의 혐의를 씌워 귀양보냈다. 신하들에게 충성 충(忠)자를 크게 새겨넣은 관모를 쓰게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절대권력의 종말은 허무했다. 그를 몰아내려는 쿠데타(중종반정)가 벌어졌을 때 왕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요된 충성과 침묵이 모반의 대열에 가담하는 데는 하룻밤도 걸리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국민을 기만한 탕아로 전락한 안희정의 정치적 말로와 다를 게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참모들의 생각을 원치않았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부하는 옷을 벗어야 했다. `블랙리스트를 집행했다가는 나중에 큰 사달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대통령에게 진언한 장관은 해외 출장 중에 경질을 통보받았다. 장관의 생각은 적중했고, 장관의 생각을 불경죄로 다스린 대통령은 감옥에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조만간 네게 닥칠)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국민의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개선할 때 부하를 시켜 등 뒤에서 외치게 했던 말이다. 갈채와 환호에 취해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했던 행위이다. 너는 다른 모든 생물체처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하잘 것 없는 존재일 뿐이니 겸허하고 자중하라는 따가운 경고를 자신에게 퍼부은 것이다.

때로는 황제가 개선할 때도 이런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황제는 `메멘토 모리'를 “당신은 죽음을 목전에 둔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이니, 지금의 권력에 취해 신이 될 생각은 추호도 하지말라”는 경구로 들었을 것이다. 겸허하고 신중하게 권력을 행사하고자 한 고결한 행동이었다.

신을 사칭하고 싶은 욕망과 유혹을 얘기할 때 종교권력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0년부터 5년간 전문직군별 성범죄 발생 건수를 집계한 경찰청 자료를 보면 종교인이 442건으로 가장 많다. 요즘 미투 운동으로 시끄러워진 직종인 예술인(212건)의 2배, 교수(110건)의 4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미투의 파고가 종교계에서 저조한 것은 관계의 엄격함과 폐쇄성이 강한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관 뚜껑 닫힐 때까지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수도자들의 경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종교인을 포함한 모든 권력자들은 자신이 일장춘몽에 그칠 한낱 인간일 뿐이고 누리고 있는 알량한 권력 역시 조만간 끝이 날 시한부임을 상기시킬 `메멘토 모리'를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로마시대의 황제나 장수들처럼 누군가에게 시키기는 어려울 테니 스마트폰에라도 저장해놨다가 주어진 권력을 주체할 수 없어 착란 증세가 일어날 때마다 크게 켜서 거듭거듭 듣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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