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새끼 오리에게
미운 새끼 오리에게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8.03.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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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미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를 아시죠? 유난히 큰 알에서 태어나 보통의 오리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주변 오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새끼 오리는 상처받고 떠돌며 갖은 어려움을 겪어요. 그러나 춥고 외로웠던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우연히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음을 알게 되어요. 별다르게 생긴 오리였던 게 아니라 아름다운 백조였던 거죠.

이 동화를 읽는 동안 마음속에 저절로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지금 오리의 무리에 있지만 실제로는 백조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보는 거예요. 가늘고 긴 목을 부드럽게 접어 숙이고 호수 위에 잔잔히 떠 있다가, 긴 목을 쭉 빼고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우아한 백조, 거울같이 맑은 호수 위에 비친 내 모습에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되었나 봐요. 현실적으로 내가 그 무리에 있다면 백조보다는 오리일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걸 알게 됐어요. 미운 새끼 오리가 시간이 지나도 다른 오리보다 좀 커다란 그냥 오리일 뿐이란 생각도 들고요. 어느 날 재벌 아빠가 잃어버린 딸이라고 나를 찾아올 확률도 없고, 어느 날 깨우침을 얻듯 갑자기 성적이 확 오른다거나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이 생기게 될 확률도 거의 없어요. 어쩐지 좀 다르게 생겼다고 새끼 백조를 놀렸던 평범한 새끼 오리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무딘 존재로 여겨진 보통의 새끼 오리들, 시간이 지나도 그냥 오리인 대부분의 존재에 마음이 더 갑니다.

이 평범한 안데르센의 새끼 오리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우리나라의 동화가 있어요.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입니다. 주인공은 양계장에서 알만 낳는 산란계인 암탉 `잎싹'인데, 알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소망을 갖게 돼요. 암탉이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꿈입니다.

늙어서 알도 낳지 못한다고 버려진 잎싹은 안전한 양계장으로 돌아가는 대신 낯선 저수지로 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족제비에게 쫓기는 위험한 삶입니다. 어느 날 늪지의 수풀에서 우연히 알을 발견하고는 기쁘게 품고, 새끼가 부화하자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키웁니다. 드디어 새끼를 돌보는 어미가 된 거예요. 소망을 이룬 거예요. 잎싹은 아기 청둥오리가 다 자라자 자신의 목숨을 족제비에게 내주기까지 하며 기꺼이 무리 속으로 날려 보냅니다.

잎싹의 용기와 희생도 감동적이지만, 암탉으로서 당연한 삶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한 것이어서 간절히 소망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보다 훨씬 숭고해 보입니다. 알조차 낳을 수 없는 잎싹이 자신의 알을 품을 수 없는 한계에도 자신의 알만 고집하며 절망하거나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최선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특별해 보입니다.

성장한 새끼를 청둥오리 무리로 날려 보낼 수 있는 늙고 병약해진 어미 암탉 잎싹은 초라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장군 같은 수탉보다 위대하고 용감해 보입니다. 안전한 양계장으로 돌아가는 대신 낯설고 위험한 저수지로 가는 선택이 소망을 이룰 가능성을 주었지요.

이 동화를 읽고 새끼 오리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엄청 궁금해집니다. 최소한 백조가 되기를 꿈꾸는 오리가 되지는 않길 바랍니다. 백조가 백조인 것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잖아요.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고, 소망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는 성숙한 오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루하루 따뜻해지는 봄 햇살에 하루하루 커지는 새끼 오리들의 재잘대는 소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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