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존여비(男尊女卑)가 낳은 한(恨)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낳은 한(恨)
  • 류충옥<수필가·청주경산초 행정실장>
  • 승인 2018.03.1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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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류충옥

성을 돈으로 사는 매춘을 넘어서 권력과 지위로 욕망을 채우는 성폭력의 추악한 민 낯이 미투 운동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 문인, 배우, 교수, 정치인, 사장, 농부 등 너나 할 것 없다. 곪을 대로 곪은 환부의 고름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힘과 권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쟁취할 수 있단 말인가? 성폭력은 역사적으로 이어 온 남존여비 사상에 깊이 뿌리 박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남녀 불평등 현상은 세계 거의 모든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유교의 남존여비 사상은 한국 여성의 생애를 지배한 근본 개념이었다. 조선시대의 여성은 경제적 독립이나 사회생활이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남성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요구된 조선 여성의 성 윤리는 순종과 정절이었다. 열녀문과 은장도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조선 시대 `경국대전'에는 과부재혼금지를 법으로 정해 놓고 수절을 강요했으며, 순결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게끔 은장도를 지니게 했다. 삼종지의(三從之義)라는 덕목으로 아버지, 남편, 아들만을 의지하며 남성을 통한 의존적 삶을 살게 만들었다.

숱한 전쟁 통에 여성들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 60만 명 중 50만 명이 여성이었다. 고초를 겪고 고향에 돌아온 여인들은 정절 잃은 죄인으로 낙인찍혔다. 소박맞고 문중에서 쫓겨난 그녀들은 자결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화냥년(환향녀·還鄕女)과 호로자식(오랑캐의 아이)도 이때 비롯된 비속어이다. 일제 침략 시기에 위안부로 끌려가 성 노예로 살아야만 했던 꽃 같던 언니들은 지금 호호백발이 되었어도 억울함에 눈을 감지 못한다.

그동안 억음존양(抑陰存養)의 상극(相剋) 질서 속에서 여성은 차별과 억압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과거에 비하면 여권이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그 잔재가 아직도 뿌리 박혀있어 사회활동 인구 수나 임금, 승진, 가사노동 등 여러 면에서 차별이 존재한다.

지난 8일은 110주년을 맞는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 날 사회 곳곳에서 시민·여성 사회단체들이 미투와 여성 노동자 권리 개선 운동을 지지하는 기념행사와 집회를 열었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자 남성들은 `펜스 룰'을 쳐서 방어하겠다고는 하나 이는 또 다른 `유리천장'을 만들 뿐 근본적 대안은 될 수 없다.

이젠 본질을 파악해야 할 때다. 동료를 성적 대상(sexuality)으로 보지 말고 사회적 동지(gender)로 함께 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존여비 관념을 깨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과 배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나의 아내이고 누이이며 엄마일 수 있고, 무엇보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 미투 운동-나도 고발한다(#Me Too):성폭력 생존자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잇달아 고발한 현상.

※ 펜스 룰: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발언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여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스킨십을 최소화하여 오해받을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행동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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