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히로시마
슬픈 히로시마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3.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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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방학 때 조그마한 국제학회를 열었다. 한중일과 서구가 불교를 수용하는 태도 및 상황이 다르기에 한 번 모아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다 잡담 중에 어떤 한 사건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같은 문제를 다른 교수들에게도 제기해보았는데, 여러 의견이 있었다.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문제는 오바마 미대통령이 히로시마 원폭투하장소-이른바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Peace Memorial Park)이라고 불리는 곳을 방문한 일에서 비롯된다.

B:이번에 학회 건으로 히로시마에 갔을 때 평화공원을 들렸어요.

A:예? 저는 못 가겠던데요. 십여 년 전 히로시마 역전에서 한참을 고민했어요. 한국인으로 그곳을 가도 되나? 결국 `평화'라는 말이 붙은 그곳은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본 3대 정원 가운데 하나라는`후락원'(後樂園: 백성이 즐거운 다음에야 즐겁겠다는 뜻)에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B:예? 오바마도 갔잖아요?

A:2016년에 오바마가 아베랑 갔을 때, 내 입장에서는 미 대사관에 항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한국인의 감정을 어쩌고 그러는지 몰라서요. 나도 나가사키 원폭투하 장소는 올라갔어요. 그러나 거기는 `평화'라는 말이 강조되지 않았고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주장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어요.

B:중요한 건 전쟁과 상관없었던 수많은 민중들이 죽은 것(1~20만 가량) 아닙니까? 그리고 반핵은 옳잖아요?

A:아베가 오바마를 데리고 간 것도 웃겼어요. 아베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서 전쟁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 있나요? 그것도 안 된 상황에서 무슨 평화입니까? 원자폭탄 덕분에 조선 사람들은 해방된 것이 아닙니까?

B:그래도 핵무기는 사라져야 할 것 아닙니까?

A:맞아요. 핵무기 없는 세상이 좋지요. 그러나 그것은 장차 이야기고, 그 당시 원자폭탄이 발명된 까닭과 그 기능을 잊을 수는 없지요. 지금 반핵이라고, 그때도 반핵이어야 하나요? 무고하게 죽은 일본사람도 안 됐지만, 수탈되는 우리 민중은 어떻게 하고요.

B:반핵이 보편적인 가치라면 그것에 대해 동의를 표하는 오바마의 태도는 옳다고 생각돼요. 과거에 간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간 건데.

A:내 입장에서는 과거에 대한 해결이 명확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범자도 그렇고 위안부도 그렇고, 오지 않은 이상을 말하는 것은 이상해요. 독일처럼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에도 사죄하고 내일을 꿈꿔야지,`정신대는 매춘부'라는 극우의 주장이 여전히 판치는 작태를 용납하면서 어떻게 `평화'를 말하지요?

B:그렇다고 해서 인류보편의 가치가 사라질 수 있나요? 대량학살(massacre)은 안 된다는 것, 핵무기는 인류의 적이라는 것, 평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 등등 말입니다.

C:결국 과거사에 대한 사죄가 판단의 기준이 되겠네요.

D: 힘 있는 가해자(미국)는 머리 숙일 수 있지만, 힘 없는 피해자(한국)는 머리 숙일 수 없는 것 같네요.

그 공원에는 `10만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고 원폭 희생자수가 2만이 된다'고 적혀있는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한 구석에 있다. 오바마가 그곳에 갔으면 어땠을까?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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