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성소
내 안의 성소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8.03.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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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내 안에는 나만의 궁(宮)이 있다. 사면이 투명한 유리로 지어진 방이다. 그 방은 은은한 햇살의 출입만이 허용될 뿐이다. 극성스럽기로 소문난 모성애도, 아무리 초콜릿처럼 녹아드는 사랑도 허락되지 않는다. 오롯이 나이어야만 한다.

화장을 지운 맨얼굴의 나를 만나는 곳이다. 치장된 겉치레를 벗고 꽁꽁 싸맨 비밀도 알몸을 드러낸다. 내가 아무리 초라하고 볼품이 없어도 주인은 맨발로 뛰어나와 반겨준다. 아무리 늦은 시간에도 귀찮은 내색 없이 기다려주는 주인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아려 견딜 수가 없으면 나도 모르게 그 방 앞에 와 있다. 흠집난 자존심에 욱신거리는 통증은 문을 여는 순간 쓰러지고 만다. 온몸이 마취된 것처럼 꼼짝도 못하겠다. 마치 만취한 사람이 집에 잘 찾아와 놓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정신을 못 차리듯이 말이다.

어디가 아픈지, 왜 힘든지, 무엇이 괴로운지를 한 번도 묻지 않아 좋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다. 지친 심신을 누이면 치유를 위한 왕진을 한다. 머리를 만져주고 마음을 토닥인다.

쉰을 넘기면서 나는 이 방을 가끔 방문한다. 아직도 조율이 되지 않아 서로 할퀴는 부부싸움은 자존감이 상하는 충돌이다. 그이와 부딪힌 충격은 나에게는 한겨울의 정전이다. 머리가 뒤엉키어 멘붕이 온다. 이런 날은 아예 문을 걸어 잠근다.

주인을 마주하여 긴 고해성사가 시작된다. 나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나를 아프게 만든 사람들이 싫고 원망스럽다. 그이도 밉다.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는 너그러운 주인은 늘 내 편이다. 나에게 내려진 처방은 한가지다. “괜찮다. 괜찮다.” 감아놓은 태엽처럼 들려오는 말은 최고의 특효약이다.

투약 된 약물이 마음에 번지면 주르르 눈물이 난다. 치유되고 있다는 증거다. 흐르는 눈물 줄기는 내 안에 파고들어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억울함이 사라지고 힘듦을 잘 견뎌준 지금의 내가 장하고 대견해진다. 이어 용서와 화해가 앞에 와서 손을 내민다. 그때를 틈타 햇살이 내게 긁힌 상처로 아파하고 있는 이들을 환히 비추어준다.

그 방을 나오는 나는 두꺼운 외투를 벗은 듯 가볍다. 다시 일어날 힘이 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긴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 그들에게 먼저 사과를 청한다. 어쩌면 지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일임을 아는 순간부터 평화로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유리방을 드나드는 횟수가 줄어든다. 오히려 거기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또한 상처가 깊을수록 오래 걸린다. 나를 회복시키는 게 점점 더디다. 나는 이 방을 오래도록 드나들 생각이다. 분노가 파도처럼 출렁일 때도,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부딪혀 깨진 날에도 나를 만날 작정이다.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여기뿐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우리 내면에는 언제든지 들어가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고요한 성소(聖所)가 있다”고 했다. 나의 유리방도 고요했다. 오늘의 막막한 어둠 속에 갇혀 밝은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절망하는 내게 나의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림자란 빛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 나는 이미 희망의 빛 속에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마음 안에 들어 있는 알 속마음. 그 산실을 헤르만 헤세를 빌어 생각한다. 나약해지는 나를 끝까지 부추겨주고 좌절하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곳. 나의 눈빛이 깊어지고 사유가 넓어지는 곳. 나를 키우는 곳. 나는 이곳을 성소(聖所)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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