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보세요
  • 김경수<수필가>
  • 승인 2018.03.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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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경수

출근을 하려고 대문을 여는 순간 수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고 앞을 커다란 차가 가로막고 있었다. 수철은 몹시 당황스러워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수철은 혹시라도 주변에 아는 사람의 차라도 될까 싶어 차 안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연락할만한 흔적이나 전화번호 따위 같은 건 발견할 수 없었다.

수철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가며 한편으로는 그를 단죄하여 혼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하였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렇게 불법주차를 하고 간 사람은 자신이 한 행위를 아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불법주차를 하고 간 것인지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뻔뻔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건지 어쩌면 절박하거나 급한 일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기에 그 누군가를 몰상식한 사람으로만 몰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길을 지나던 지인이 불법주차가 되어 있는 앞뒤 차로 연락을 취해 그들에게 협조를 구해보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처해있는 여건이 당장 달려가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저만치 떨어져 있는 곳에서 순여사가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순여사 역시 매일 아침 손수레를 끌고나가 행상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처지였다. 그런데 차들이 막고 있어 수레가 나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주차문제로 싸우는 일들은 비교적 종종 보는 일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길 건너편 최 영감이 연락을 취할 수 없어 불법주차 된 차량에 깡통과 돌을 매달아 놓자 큰 싸움이 한 바탕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수철은 자칫하다간 하루 일과에 큰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고 있었다. 이미 출근해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긴 지 오래였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기대했던 시간이 쌓여간 것이었다. 수철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하나 둘 몰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불법주차로 인해 수철의 출근길을 막은 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수철은 어쩔 수 없이 차를 두고 출근하려는 순간 차고 밖이 훤한 느낌이 들었다. 수철은 재빠르게 대문을 열어보았다. 차고 앞을 가로막고 있던 차가 사라진 것이었다. 얼굴이라도 보면 한번 따져 보려고 벼르고 있던 수철은 해결이 된 시원함보다 공연히 일그러지는 울분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화번호 하나만이라도 남겨 놓았으면 섭섭하고 원망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하면서도 수철은 그를 이해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가슴속에 뭉클한 분노가 못내 가시지 않는 듯했다.

양해를 구하는 자와 관용을 베푸는 자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작은 흔적으로 최소의 예의를 지키고 또한 너그럽게 관용으로 서로가 웃음으로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급하거나 절박한 일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될 것이다. 단 몇 자의 전화번호만 남겨 놓아도 해결될 수 있는 일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보세요?”라고 이름 모를 그대에게 부드럽게 메시지를 건넬 수 있다면 조금은 서로에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지 않을까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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