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이 흔들린다
솔방울이 흔들린다
  • 박재명<충북도 동물방역과장>
  • 승인 2018.03.0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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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박재명<충북도 동물방역과장>

차의 대시보드 위에 나란히 서 있는 솔방울 4개가 운전을 즐겁게 한다. 함께 한지 적게는 2년, 오래된 것은 벌써 6년이 넘는다.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솔방울을 주워 온 곳의 좋은 추억이 생각난다. 가족들과 부산 해변에서 주운 해송 솔방울, 직장 동료와 함께 제주 관아에서 만났던 솔방울, 그리고 틈틈이 산행을 하면서 만난 진도와 강진의 어느 산의 솔방울들이다. 많은 운전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회전과 급정거 사이에 수시로 굴러 떨어지면서도 용케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루에 두어 번 만나는 그 솔방울을 볼 때마다 소나무를 바라보며 자란 고향의 앞산과 뒷산의 추억도 함께 떠오른다. 그때 산에는 푸른 소나무로 덮였었다. 봄이면 소나무 새순의 껍질을 벗겨 껌처럼 씹었다. 여름이면 깡통 들고 산에 올라 송충이를 잡던 시절도 있다. 여름내 솔바람을 맞으며 나무 아래 쉬기도 하고, 가을이면 버섯을 채취해 보는 것도 즐거웠다. 겨울이 다가오면 땔감을 구하러 소나무의 마른 삭정이를 꺾고, 땅에 떨어진 솔잎을 긁어모았다. 눈 내리는 겨울 아침에 방문을 열면 두꺼운 눈을 켜켜이 이고 서 있는 소나무 풍경은 참 보기에 좋았다. 그렇게 나의 유년은 사계절 소나무와 벗하며 몸과 마음이 푸르게 성장했다.

공부하느라 도회지로 떠나오고, 직장을 정하고 나니 고향은 한층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가끔 고향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나를 키워 준 소나무였다. 그러나 점차 고향에 가는 빈도가 떨어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니 발길은 더욱 뜸해졌다.

그간에 산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숲을 들여다보면 참 많이 변했다. 앞산 뒷산에 푸르던 소나무는 점차 활엽수에 잠식되어 갔다. 늙은 노송은 기운을 다하여 죽기도 하고 베어져 나갔다. 수크령 하얗게 피던 뒷동산에도 어디서 씨앗이 날라 왔는지 은사시나무가 자리를 잡아 큰 숲을 이루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굽이치며 흐르던 물길은 사람의 힘으로 곧게 변하고, 산은 산대로 소나무가 사라져 가고 있다.

변한 것이 어디 산천뿐이랴. 우리 사는 방식도 참 많이 바뀌었다. 3대가 밥상을 함께하며 대가족을 이루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어른은 어른대로 시골에 남아 여생을 보내고, 이제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시는 중이다. 마을에는 이미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그 크던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폐교의 수순을 밟고 있다.

도시는 핵가족화 되어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을 저만큼 떠나서 자라고 있다. 예절도 품성도 예전만큼 못해 보기에 늘 걱정스럽다. 어른은 직장 중심으로 살아가고, 아이들도 제각각 학업이며 직장을 장만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인성은 삐뚤지 않아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 선한 청년으로 자랐으니, 각종 범죄소식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그것만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청년들에 대한 걱정들이 많다. 우리 그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청년들의 사고방식이 영 마땅치 않다는 탄식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저 산과 들이 변하는 것처럼 우리 살아가는 방식과 사고도 바뀌며 변해 가는 것을.

그렇지만 산은 여전히 푸르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산이 활엽수로 바뀐들 산이 강이 되는 것은 아니고, 물길을 바로 잡는다 해서 물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사람들도 산처럼 물처럼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아이들이 지금의 환경에 살아가는 방식도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나의 고정된 사고를 아이들에게 너무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또, 너무 걱정하지도 않기로 했다. 내가 자라며 가진 사고방식을 지금의 청년들에게 요구하기에 세상은 너무 급변하고 있다. 저 산과 강의 변화를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오류일지도 모를 일이다. 촛불은 태극기를 탓하지 말고, 태극기도 촛불을 마땅치 않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름 생각의 차이일 뿐 근본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산과 시내가 아무리 변한들 산은 여전히 산이요 물도 물이다. 솔방울은 오늘도 내 차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솔방울이 주는 즐거움은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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