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
진주 목걸이
  • 정상옥<수필가>
  • 승인 2018.03.05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정상옥

햇살이 가득 든 창가에서 그녀의 목이 빛났다. 내 시선이 자신의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에 머문 것을 눈치 챘는지 저렴한 액세서리라고 살짝 귀에 대고 말한다. 겸연쩍게 웃는 그녀에게 진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옷차림의 분위기에 참 잘 어울린다는 진심 어린 찬사를 건넸다.

내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목에는 늘 진주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어머니의 일생은 모파상의 작품 `진주 목걸이'에 나오는 마틸드와는 전혀 달랐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 볼리스체에게 진주목걸이를 빌려서까지 겉치레하는 삶과는 상반된 천생 촌부村婦였다. 그럼에도 밤이면 일에 찌든 광목앞치마는 벗어 놓았지만 굵은 진주목걸이만큼은 목에서 풀질 않으셨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진주 목걸이를 그냥 어머니의 신체 일부쯤이려니 했었던 것 같다. 이승의 연을 다하고 하늘로 영면 안식을 떠나시며 비로소 풀어놓은 목걸이는 생전의 손때 묻은 소박한 물건들과 껴묻거리로 땅에 묻히는 걸 보면서도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오 년 전 이맘때쯤이었다.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절제 수술을 하고 나니 내 목덜미에는 선명한 자국이 남았다. 그 흉터를 감추기 위해 굵은 진주목걸이를 걸다가 어머니의 목이 섬광처럼 떠오른 것이다. 몇십 년 전 어떤 수술을 받고 오신 어머니의 목에 진주목걸이가 걸렸던 것도 그때부터란 걸 비로소 기억해낸 것이다. 현대의 발달한 의술 덕에 갑상선암은 생명에 대부분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수술대에 누우니 죽음이란 두려움이 엄습해왔고 그때 가족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었다. 수술 전에 벗어놓은 신발을 다시 신고 나와 자식들을 품에 안을 수 있을지가 가장 두려웠다던 어머니가 문명과 의술에 어둑하던 그 시절에 직면한 생소한 병명 앞에서 얼마나 두려움으로 가슴을 졸였을까.

그때 어머니가 진주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알고 목걸이를 착용했는지는 우매한 자식은 지금도 알 순 없다. 다만 안온한 가정의 중심체로 삶을 영위해가길 염원했던 어머니께 닥친 병마는 진주조개에 박힌 모래알처럼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모래알을 품은 아픔의 결정체가 한 알의 진주로 탄생하듯 두려움과 고통을 참아내며 홀로 흘린 어머니의 눈물방울들도 알알이 가슴에 박혔으리.

달은 어둠이 만들어낸 역설의 빛이고, 어둠 속에서 도리어 빛을 만들어낸 것이 진주의 빛이라 한다. 병마를 이겨냈다지만 늘 강건치 못했던 어머니는 우리 육 남매의 영원한 빛이었다. 자식들을 생각하며 살려는 의지의 시간 속에 숨어서 흘린 눈물방울들과 속 울음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든다면 지금 내 목에 몇 바퀴를 감고도 남으련만.

목에 남은 수술흔적을 감추기 위해 목걸이를 걸다가 진주 한 알 한 알에 삶의 의지와 건강을 절실하게 염원했을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제는 감정도 무뎌질 만큼 별리別離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어머니를 닮아가며 늙어가는 자식의 가슴 한켠에서는 오늘도 그리움이 모래알을 품은 조개처럼 아프게 자라고 있다.

바다 속 거센 파도에 흔들리며 고통을 품고도 더 단단한 한 알의 보석을 기어이 만들어낸 진주조개 같은 어머니의 진주목걸이. 그것은 결국 눈물이다. 아픈 그리움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