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한 조각에서 찾은 구석기인의 삶터
-청주 율량동유적
돌 한 조각에서 찾은 구석기인의 삶터
-청주 율량동유적
  • 우종윤<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03.04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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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 우종윤

인류의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발전되어 왔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기록을 통해서 얻기도 하고, 땅속에 묻힌 물질자료(유물)를 통해 이해하기도 한다.

특히 땅속에는 인류가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약 250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활동하였던 공간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서로 다른 재질과 기술을 적용하여 만든 유물들이 층서적으로 퇴적되어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만든 시기와 환경, 기술, 생활문화 등을 함축하고 있기에 이를 통해 옛 사람들의 행위와 문화를 해석하고 그들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다.

2003년 초에 구석기시대에 형성된 갱신세 퇴적층에서 우연히 돌 한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돌은 구석기시대 사람이 의도적으로 도구를 만들기 위해 떼어낸 격지석기였다. 이 돌 한 조각의 발견으로 2만5000년 전 현생인류인 슬기슬기사람(Ho

mo sapiens sapiens)이 석기를 생산하였던 율량동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되는 계기가 된다.

이곳은 1958년 창업한 신흥제분 공장터였다. 이후 이원종 도지사의 공약사업 중 하나로 특급호텔(라마다플라자 청주호텔) 건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공사는 돌 한 조각의 발견으로 중지되고 정밀한 고고학적 조사가 필요해졌다. 필자가 이 유적을 처음 접한 것은 2003년 6월 13일이다. 유적은 터파기 공사로 거의 훼손된 상태였으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는 퇴적층이 일부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부분은 전체 사업면적의 약 8% 정도에 불과하다. 이곳을 충북대학교 박물관 조사팀이 2003년 7월 ~11월까지 발굴조사 하였다. 율량동유적 발굴 현장에서 뜨거운 한여름과 거센 장마를 견디며 보냈고, 도지사의 공약사업 추진이 중지되자 도청관계자들도 함께 바삐 움직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힘든 과정 속에서 율량동에 터를 잡고 살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석기제작소와 여러 종류의 석기들이 하나둘씩 오랜 기간 땅속에 묻혀 있다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형성시기를 달리하는 2개의 문화층과 석기제작소를 찾았고, 772점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1문화층에서 확인된 석기제작소는 5.8×4.1m 범위로 428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석기는 석기생산과 관련되는 몸돌·격지·조각돌이 대부분이고, 4㎝ 미만의 작은 조각들이 많아 전형적인 석기제작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서 생산된 도구는 찍개·주먹대패·자르개·밀개·긁개 등이며 기능적으로는 짐승사냥과 같은 힘든 일보다는 가공과 조리 같은 비교적 가벼운 일에 적합한 도구를 제작하여 일정기간 이곳에서 안정적인 삶을 꾸려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석기제작에 사용된 돌감은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석영맥암을 주로 사용하였다. 석기제작에 용이한 보다 질 좋은 암질을 특별히 선택하지 않고, 석영맥암을 선택한 것은 삶터 주변의 자연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석기를 만들어 썼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나, 그들의 흔적은 석기제작소라는 터와 여기에서 생산된 석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살았던 당시에는 차가운 추위가 엄습하였던 시기이다. 율량동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석기제작소에서 여러 종류의 석기를 제작하고, 이들 석기를 이용하여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는 슬기로운 삶을 살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무리지어 활동했던 생활터는 오늘날 사람들이 모여 휴식과 여가, 쇼핑을 즐기는 호텔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본래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터를 잡고 문화의 꽃을 싹 틔었던 곳으로 오늘날까지도 삶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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