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모보다는 며느리
식모보다는 며느리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8.03.0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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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크기가 처음보다 세배쯤은 늘어난 것 같다.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니 남들보다 더 두툼한 옷을 입어야 하는 칠순의 할머니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배낭 속에 들어 있는 판매용 상품들 한편을 비집고 꺼내놓는 글 한 편에 가슴이 뭉클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작업이지만 여러 해 그녀의 고단한 삶을 봐 왔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칠순잔치라는 제목의 글을 합평하기 위해 읽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수강생들이 집중한다.

며느리로, 아내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 안타까웠던 자식들이 처음으로 보내준다는 칠순기념여행이었다. 그마저 떠날 수 없게 발목을 잡은 건 모질게 시집살이를 시켰던, 지금도 진행형인 구순의 시어머니와 치매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식이 돌봐주겠지만 시어머니를 며칠 동안 모시고 있겠다고 나서는 동기간이 없었다. 혼인 후 지금까지 며느리를 종처럼 부리는 어머니를 보고 시누, 시동생들도 올케를 그저 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도 묵묵히 참았단다.

남편이 아이들의 학비조차 주지 않아 공순이로 몇십 년을 지냈다는 그녀는 해외여행을 가면 안 되는 일이었다. 여행이 무산되자 집안 식구들을 초대해 칠순잔치를 열어준 자식들이 기특하고 고맙다고,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행복해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마지막 문장에 다다르자 설움이 밀려오는지 떨리기 시작한다.

식모 구하기보다 며느리 얻는 게 쉽다는 말이 있었다. 우리 세대는 심심찮게 이런 말을 들었다. 식모처럼 시집식구들의 수발을 들면서 좋은 소리도 못 듣는 며느리들도 주변에 더러 있었으나 이처럼 경우 없는 일은 처음이다. 상하관계를 유지하며 며느리를 종으로 여기고 일일이 참견을 마다 않는 시어머니를 돌봐야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남편의 병수발을 든다.

대소사에는 돈을 주지만 소소하게 들어가는 생활비는 아직도 줄 생각을 하지 않는 남편이라 필요한 것은 본인이 벌어야 해서 어느 회사의 판매사원으로 들어갔다. 생필품을 주문받아 판매하려니 삶의 무게 못지않게 배낭의 무게도 늘어갈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가족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따듯한 기운이 솟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과연 그런가. 어떤 이는 가족을 무를 수도 내칠 수도 없는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가족 앞에서 극단적인 소외를 경험하기도 한다.

헌신은 숭고하지만 답답하다고 젊은 며느리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시집의 시자도 싫어 시금치를 안 먹고 고부갈등이 심한 시어머니는 며느리 꼴 보기 싫어 멸치를 안 먹는단다. 웃어넘기기엔 뒷맛이 씁쓸한 유머다.

시집살이도 당해본 사람이 시킨다고 하는데 그는 며느리가 너무 잘해서 며느리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다고 열심히 글을 쓴다. 그분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을 비우고 삶에 순응하는 후덕한 성품이 잿빛 대지를 적시는 봄비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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