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탄생
시간과 공간의 탄생
  • 권재술<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3.01 2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 권재술

과학자들은 빅뱅이라는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고 한다. 탄생, 새로 생겨남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탄생이란 어떤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새로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물질이다. 다시 말하면 탄생이란 물질의 생겨남이다. 빅뱅으로 소립자가 생겨나고 그것들로 원자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모여서 별이 되고 은하가 되고 그래서 이 우주가 되었다. 그것은 모두 물질이다. 하지만 그것이 빅뱅의 전부는 아니다. 시간과 공간도 빅뱅과 동시에 탄생했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도? 시간이나 공간이란 물질이 아니다. 물질이 있건 없건 시간과 공간은 무한한 과거에서 무한한 미래에 이르기까지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생겨났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빅뱅이 일어나기 전, 물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시간이 무엇인가?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변화가 없다면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동차가 달리고,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뭐 이러한 변화를 보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변화가 없어도 시간이 흐른다고 할 수 있을까? `변화'란 무엇이 변하는 것인가? 물질이 없어도 변화가 있을까? 변화가 없는데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흐르지 않는 시간, 그것은 시간이 아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17일 만에 구조된 사람이 기자에게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줄은 몰랐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슨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을까? 간간이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만이 변화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에게 시간은 그렇게 매우 느리게 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을 그렇게 오래 버티게 했을는지도 모른다. 변화가 없으면 흐름도 없다. 흐름이 없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란 사물의 변화에 대한 인간의 관념이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는 물질이 없었다. 물질이 없으면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변화가 없으니 어떻게 시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간은 빅뱅과 함께 생겨난 것이다. 어떤가? 빅뱅으로 시간이 만들어졌다는 말이?

그러면 공간은 어떤가? 공간은 물질이 없어도 존재하는 것인가? 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해 보자. 방이라는 공간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방이 큰지 작은지는 벽과 벽 사이의 거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벽이 없다면 방이라는 공간은 없다. 공간이란 물질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에 대한 인간의 관념이다. 만약 이 우주에 입자 하나만 있다고 해 보자. 그 입자의 위치가 어디인지 말할 수 있을까? 좀 더 나아가 입자 두 개만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두 입자 사이의 거리를 말할 수 있을까? 두 입자 사이의 거리는 그 두 입자 사이에 늘어선 `그 무엇'(다른 입자)으로부터 알 수 있다. 그 두 입자 사이에 `그 무엇'이 없다면 어떻게 거리를 알 수 있겠는가? 공간이란 텅 빈 무엇이 아니라 입자들의 배치관계일 뿐이다. 입자가 없으면 공간도 없다.

시간도 공간도 자연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관념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물질이고 이 물질의 변화와 이 물질들의 배치상태가 존재할 뿐이다. 시간과 공간은 이 물질들의 변화와 배치상태를 바라보는 인간의 관념일 뿐이다.

동물에게도 이 시간관념, 공간관념이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있다고 해도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 관념과는 다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너무나 많이 익숙해져 있다 보니 그것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이란 자연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사물의 변화와 배치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시간과 공간은 관념일 뿐이지 실체가 아니다. 관념은 인간의 정신 작용의 산물이다. 시공간이 빅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관념이기 때문에 결국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마음이 없다면 시간도 공간도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