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독(毒)이 된 사회
침묵이 독(毒)이 된 사회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02.27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침묵이 미덕인 시절도 있었다.

알면서도 눈감고 혼자만 입 다물면 다 잘 사는 줄 알고 암묵적으로 침묵을 강요하기도 했다.

물도 고이면 썩고, 상처도 방치하면 곪는다.

침묵이 독이 된 세상. 힘없는 이들의 침묵은 힘을 가진 자들이 욕심을 채우는 명분으로 전락했다.

충북에서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1호를 기록한 배우 조민기 청주대 교수 사건만 봐도 그렇다.

자신의 수많은 여제자는 물론 아르바이트생까지 조 교수와 관련된 성추문은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창피할 정도다.

유명 배우인 그가 청주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한때 지역에서는 자랑거리였다.

청주대는 신입생 환영회나 축제때 모교 출신 연예인을 무대에 세워 대학 인지도 향상에 활용하기도 했다.

지역 자랑거리였던 조민기 교수는 이젠 지역의 수치로 남았다.

그의 성추문에 대학은 난감해하고 있다. 교육부가 실시한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4년 연속 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돼 올해 추진하는 2주기 평가에서 명예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조민기 교수의 사건이 터지면서 찬물을 끼얹게 됐기 때문이다.

조 교수가 가르쳤던 연극학과 학생 38명은 최근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피해 사실을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등한시했던 지난날의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음을 고통스럽게 시인하며, 다시는 침묵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조민기 교수에게 청주대 동문과 피해자들을 향한 폭력을 인정함과 동시에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에게 왜 침묵했느냐고 반문할 수가 없다. 교수는 학생들의 꿈을 좌지우지할 칼자루를 쥔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조민기 교수는 졸업 후 취업에 영향을 미칠 성적을 주는 사람이었고, 학생들의 평생의 꿈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청주대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큰 게 아니다.“우리가 사는 세상이 권력과 욕망에 순수한 꿈이 점철되는 사회, 성피해자들이 숨어야 하는 사회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는 것 뿐이다.

조민기 교수 사건을 계기로 대학가에는 미투 운동이 번졌다.

유명 연극배우이자 음성 극동대 교수였던 한명구 씨의 성폭력 의혹이 제기됐고, 대학생들이 즐겨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 `대나무숲'에도 피해 고발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명지전문대 페이스북에는 연극영상학과 교수의 성추행을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학생들의 고발글이 올라왔다.“당신들의 여제자들은 당신들의 `제자'이지 성적 욕구를 표출하는 `노리개'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당신들을 교육자로 바라보고 있건만 우리의 가슴, 허벅지, 엉덩이는 당신들에겐 `욕구표출의 대상'으로만 보이느냐”는 글은 교수와 학생 간이 사제가 아닌 주종 관계임을 드러내고 있다.

급기야 교육부는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를 통해 교수-대학원생, 교수 간, 교사-학생, 교원 간 등 학교 내 권력·고용관계에서 나타나는 성희롱·성폭력 현황을 점검하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국립대 교수(교육공무원)는 비위 정도에 상관없이 교단에서 퇴출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은 지켜봐야 한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다고 하지만 힘이 권력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잃을 게 많은 사람이 더 당당한 법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