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3·1절 위대한 우리나라
위대한 3·1절 위대한 우리나라
  • 윤승록<충북남부보훈지청 보상과 주무관>
  • 승인 2018.0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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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 윤승록<충북남부보훈지청 보상과>

며칠 후면 99번째 3.1절이다. 내년이면 벌써 100년째를 맞게 된다. 3.1절은 개천절과 한글날 다음으로, 근현대사만을 본다면 가장 오래된 기념일이다.

오래된 만큼 3.1절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일찍이 유치원 시절부터 우리는 3.1 운동을 배운다. 현충일과 개천절이 무엇을 기념하는지, 언제인지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3.1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하다. 으레 3.1절이라 하면 우리는 유관순 열사와 탑골공원, 대한독립만세 구호를 떠올린다. 그리고 매년 딱 이 정도만 떠올리고 3.1절을 흘려보냈다. 그것이 기념하는 3.1운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서 그것을 모르고 지나가버렸다. 신림동에 살아서 서울대가 대단한 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그러나 올해는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3.1절이다. 아니, 작년 늦가을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와 같지 않을까? 촛불집회를 보면서 3.1운동과 많은 점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와 보수 이념갈등을 떠나, 촛불집회 자체가 가지는 목적성과 정치적 방향성은 차치하고, 두 운동 모두 수많은 시민들이 권력기관의 부정과 불의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 대중의 의사를 표현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면서도 비폭력을 외쳤다. 그리고 둘 다 평화와 합법의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민중의 의사를 표현했고, 그런 모습은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어느 정도 대중의 목적을 이룬 이번 집회와는 달리 3.1 운동은 당장에 그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끝났다. 당시 패권 국가들의 외면도 있었고, 이를 방패로 삼아 일제는 철저히 집회 참가자들을 학살했다. 불행히도 당시에는 현재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생명의 자유, 적법절차의 원리가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투쟁의 대가는 너무나 폭력적이었고 잔인했다. 혹자는 그런 시대에 비폭력 운동이 낭만주의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순수했던 그 정신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 대신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게다가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3.1 운동을 기점으로 국내외 독립운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로 시작된 야만의 시대에 자유, 민주, 평화의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인도의 비폭력 저항운동과 중국의 5.4 운동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의 반제국주의 운동의 신호탄이 되었다.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비단 이번 촛불집회만이 아니라 3.1운동 이후로 이어지는 4.19혁명과 6월 항쟁 등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국민성이란 게 있지 않은가 싶다. 요즘 경제 불황과 안보문제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세대들이 이런 국민성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여기서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첨언하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불의와 부정을 보면 분노할 줄 알되, 올바른 수단을 통해 쟁취하는 시민사회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그동안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 그 목적마저 희석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우리 조상들의 피를 흘려야 쟁취할 수 있었던 시대보다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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