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무엇이든 쓰게 된다-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 하은아<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8.0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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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예술가들은 타고나는 걸까? 창의력은 가르칠 수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많이 든다.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영재들을 보면 타고난 재능은 분명 있는 것 같다. 따로 가르치지 않았지만 음악을 듣고 바로 연주하는 아이들, 유튜브 동영상으로 몇 개 국어를 깨치는 아이들. 보고 있으면 괜히 좌절감도 들고 주눅이 들긴 하지만 이내 그것도 그들의 복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지나친다. 그래도 예술가들의 감성이나 생각은 부럽다.

친구 한 명이 그림을 그린다. 친구는 몇 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온라인 감성아트샵을 냈다. 스케치 여행을 떠나고,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상품화한다. 가끔은 전시회도 연다. 그녀의 감성이 부럽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공간을 마주하여 해석하는 능력, 평범한 주변을 그림과 글로 풀어내는 견해가 남다르다. 그래서 그녀의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몰래몰래 그녀의 감성을 배워온다. 그녀로 인해 나도 점점 변해간다. 무채색으로 칠해졌던 일상에 색을 입히듯 사물을 보고 공간을 채운다.

그녀를 통해 깨달은 것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예술을 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대충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줄 수 있음을 말이다. 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거창하고 훌륭할 필요는 없다. 볼펜으로 죽죽 그리면 된다. 훗날 다시 꺼내봤을 때 무엇인지 못 알아봐도 상관없다.

이런 생각에 `무엇이든 쓰게 된다.(김중혁 지음)'책이 확신을 줬다. 작가는 삐딱한 시선으로 무엇이든 그리고 쓸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물건부터 소개한다. 글쓰기 혹은 그림 그리기 도구들이다. 내 책상 위에도 있고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그런 것들이다. 특별할 것이 없다. 작가는 또 글쓰기의 첫 문장은 누구나 어렵다고 말한다. 첫 문장이 근사한 이유는 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끝이 없는 첫 문장은 출판되지 못한 첫 문장이고, 출판된 모든 첫 문장은 끝이 있기 때문에 근사할 수밖에 없다. 출판된 첫 문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첫 문장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다녀온 다음에 처음 자리에 서 있는 문장이다.'라고 덧붙였다. 누구에게나 첫 문장은 어렵고 어떤 글이든 첫 문장은 근사하다.

작가는 이 책의 서두에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무엇이든 쓰고 싶을 것이라 말한다. 다 읽고 나니 꼭 그렇지는 않다. 누구나 시작이 어렵다는 것에 위안이 되고 무작정 끄적이는 것이 글쓰기와 그림 그리는 것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주저하는 것은 제3의 누가 나의 결과물을 볼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린 어릴 적부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제3의 평가를 꼭 받았다. 아니면 타인에게 보여줘야만 하는 그런 글과 그림만 그렸다. 그래서 어려웠나 보다.

작가는 책 말미에 G. K. 체스터튼의 말을 인용했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서투르게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인용의 말 끝에는 `우리는 서로서로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도 당신도 천재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말에 큰 위안과 안심이 된다. 내가 하는 사소한 일 하나도 나에게만 가치가 있으면 된다. 나는 천재가 아니어도 된다. 이렇게 혼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나에게 가치 있을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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