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 디, 라오스
싸바이 디, 라오스
  • 이영숙<시인>
  • 승인 2018.02.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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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싸바이 디(안녕하세요), 컵짜이(감사합니다)”

라오스 여행 기간 내내 제일 많이 쓴 인사말이다. 라오스는 인구 육백만 정도이며 국민 90%가 농업에 종사한다. 전체인구의 95%가 소승불교도이며 정치구조는 인민 민주 공화제이다. 평균수명이 쉰 살 정도로 짧아서 열네 살이면 조기 결혼이 가능하며 보통은 스무 살 이전에 결혼한다. 자연 상태의 유휴지가 많고 보건상태는 아주 열악하며 의료시설은 전무하여 의료계의 손길이 절실하다.

여행기간 동안 뇌리에 맴돈 화두는 `문명과 야만, 해석의 각도를 어느 쪽에 두고 기준을 정할 것인가'였다. 그 나라의 평균 수명이 백세 시대를 향하는 우리나라 절반 수명에 그치고 병이 들면 의료기관이 없어서 그 상태로 자연사하거나 인근 태국으로 원정치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만, 그들의 표정이 너무도 해맑고 온순하기 때문이다.

라오스의 수도 `달이 걸린 땅'이라는 의미의 비엔티안에서 이틀 밤을 자고 방비엥으로 간 시간부터는 그 나라의 시간처럼 아날로그로 흘렀다. 방비엥은 마치 60년대 우리나라 농산 촌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아이를 옆에 끼고 맨발로 서서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남루한 가난을 읽지만, 소금에 잔뜩 염장한 물고기 한 마리를 사이로 두고 옹기종기 식사하는 모습 위로 느릿느릿 흐르는 평온함을 느낀다. 버그카를 타고 지나는 길에 시선이 마주치면 부끄러운 듯 씩 웃어주던 해맑은 사람들, 그 모습에서 바람처럼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를 읽는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평온한 모습이다.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 적 세계관 때문일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며 자연과 공생하듯 살아가는 그들의 삶 풍경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 같다.

가끔은 아날로그 방식도 행복을 준다. 한 상 가득 차린 선상 식을 먹으며 둘러본 강변 풍경, 고삐도 없이 방목한 소와 돼지의 흐느적거리는 여유로움도 푸근하다. 플래시 달린 헬멧을 쓰고 튜브에 걸터앉아 밧줄을 잡고 탐낭 동굴을 유영할 때 장난기 발동한 일행이 바위틈으로 밀어 넣는 바람에 목이 뻐근할 정도로 긴장했지만 치기 어린 체험이 마냥 즐겁다. 방비엥 에메랄드빛 블루라군에서 다이빙하던 일행들의 모습에서 유년 시절 동무들의 모습이 보인다. 둘씩 짝을 지어 노을빛 드리운 하늘을 바라보며 긴 쏭강을 따라 흐르던 카야킹 체험은 한 편의 영화였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노사연의 `바램'을 부르며 자연스레 하모니를 이뤘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중략)-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부분에 강한 방점을 찍으며 도돌이표로 돌리던 그 시간은 오래도록 반추할 주홍빛 그림이다.

쏭강에서 느릿느릿 카약을 노 저으며 한국 노래를 불러주던 라오 청년의 미소에서 가벼운 해탈을 본다. 잠시나마 모든 짐 내려놓고 그 삶에 편승하여 내 안의 오롯한 나로 놀아본 시간, `살아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지등(紙燈)에 걸어 밤하늘로 띄워 보낼 때, 처음으로 내 안의 참나가 행복해하는 숨소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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