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수사 멈출 수 없다
채용비리 수사 멈출 수 없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2.2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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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한국판 미투(Me Too)운동이 확산되며 곳곳에서 충격적 실태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드러난 사례들은 가해 당사자들의 면면과 행위의 파렴치함에서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들은 대응 방식에서도 망가진 인격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처음엔 오리발을 내밀다가 관행으로 몰아가고, 아예 잠수를 타거나 합의나 양해가 있었다며 되레 피해자를 물어뜯기도 합니다. 미투운동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가해자들의 뻔뻔한 자기변론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분노케 해 양지로 불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폭로와 고발의 행진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단죄 없이는 이 부끄러운 적폐의 뿌리를 뽑기가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이슈는 이슈에 덮인다고 하지요. 이미 드러난 가해자나 행여 폭로되지 않을까 숨을 죽이고 있을 가해자에게는 자신들을 향한 여론을 가로채 갈 더 큰 이슈가 구세주일 겁니다. 평창올림픽이 미투의 확산에 제동을 걸어줄 것으로 기대했다가 낙담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슈는 이슈에 덮인다는 통설의 수혜자들도 있습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연루자들이지요. 채용비리는 지난해 강원랜드를 시작으로 공공기관 곳곳에서 부정이 드러나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최악의 청년실업, 흙수저 논란과 맞물리며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적폐 1호로 꼽혀왔습니다. 그러다가 미투운동이 발화되고 김여정의 방남과 평창올림픽 개막이 이어지며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연루된 세력들이 이 틈을 놓칠 리 없지요.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최근 청와대에 황당한 요구를 했습니다. 국회 운영위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청와대의 검찰수사 개입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가 3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일선 검사들이 과잉 수사하면 균형을 잡아주는 게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라고 했습니다. 수사중단을 요구했다고 봐야지요. 곽 의원은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습니다. 같은 정권에서 그 자리를 이었던 인물이 최근 1심 재판에서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우병우씨입니다. 곽 의원과 그 후임의 이력을 감안한다면 곽 의원이 청와대에 `직권남용'이라는 시대착오적 요구를 한 것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지요. 이상한 것은 강원랜드 채용비리에 유독 곽 의원 소속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연루된 것입니다.

어쨌든 곽 의원의 논지는 털어도 증거가 나오지 않는 수사를 3년씩이나 질질 끄는 것은 도를 넘은 것이고, 청와대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로 보입니다. `언어도단'수준의 궤변입니다. 지난 2013년과 2014년 강원랜드가 채용한 직원 518명 가운데 493명이 외부 권력자의 청탁을 등에 업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공공기관이 직원 95%를 부당 채용했다면 해외토픽감이지요. 실제 이들의 채용과정에서는 숱한 변칙과 위법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강원랜드가 자체 감사한 이 같은 결과를 넘겨받고도 1년 이상 수사를 끌다가 사장 등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끝냈습니다. 전 비서관 등 10여명을 청탁한 의혹을 받던 권성동 의원 등에 대해선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지요. 수사팀이 권 의원 소환을 결정했지만 윗선에서 묵살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당시 해당 지역인 춘천시 사회단체들이 들고일어났지만 검찰은 귀를 막았습니다.

최근에는 당시 수사검사가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과 권성동 의원 등을 거론하며 외압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검찰총장을 만나고 온 지검장이 사건을 불구속 종결하라고 지시했고, 권성동·염동열 의원의 개입을 추정할만한 증거목록을 삭제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수사가 3년을 끌어온 이유는 과잉수사가 아니라 이 같은 부실수사 때문입니다.

강원랜드만이 아니었지요. 정부의 자체 점검에서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 275곳 가운데 257곳에서 채용비리가 적발됐습니다. 청탁을 받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점수 조작은 기본이고 청탁받은 지원자에 맞도록 채용규정을 바꿨으며, 그래도 떨어지면 다시 인사위를 열어 합격시켰습니다. 공공기관의 90%가 관행적으로 자행해온 채용비리의 근절은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고투하는 청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정치보복 운운하는 작태에 수사가 위축돼서는 안 됩니다.

한국당으로부터 전 비서관 채용청탁 의혹을 받은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1%라도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습니다. 의혹을 받는 한국당 의원들도 청와대에 구차한 청탁을 하기보다는 노 의원처럼 자리를 거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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