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집 순례
커피집 순례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02.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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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小品文)
▲ 강대헌

휴가를 얻게 될 때마다 제 결심이야 언제나 똑같더군요.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자!”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은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우다 보니, 실상은 별로 걷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가까운 상당산성에서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콧노래 흥흥거린 지도 까마득한 옛일이군요.

인디언 달력에 따르면 2월은 `홀로 걷는 달'이라고 합니다. 혼자 걸으면서 박인희가 불렀던 노래 `방랑자'를 불러보고도 싶습니다.

방랑이 꼭 밥 먹다 체할 일은 아닐 겁니다.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의 말이 힘이 되는군요.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해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기분이 좋을까?'”

이번 겨울 휴가 때 커피집을 찾아 방랑한 시간이 떠오릅니다.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커피집 몇 군데를 인생을 나그넷길처럼 여긴다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들렀던 시간이었지요.

커피집에 앉아 얽매이는 것 없이 홀로 있다 보면, 행복감이 잔잔히 밀려왔습니다. 독재자도 노예도 되지 않는 참된 자유를 누렸다고나 할까요.

커피집마다 특징이 달랐습니다.

`제이(J) 커피집'은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 찾았습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는 반 다락방 공간의 바닥이 자꾸 눈에 밟히는 곳이었지요. 거기서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보면, 스르르 졸음이 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손님들끼리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눈치를 주는 적도 있었죠.

`에스(S) 커피집'은 벽난로가 별미라서 찾았습니다. 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기도 했지만, 포근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나무가 타닥타닥 타들어가면서 불꽃 쇼를 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죠.

`와이(Y) 커피집'은 물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어서 찾았습니다. 커피집 이름의 뜻이 “이로운 물”이었거든요. “살 때는 물처럼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물처럼 그윽함을 좋게 하고, 사람을 사귈 때는 물처럼 어짊을 좋게 하고, 말할 때는 물처럼 믿음을 좋게 하고, 다스릴 때는 물처럼 바르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하게 하고,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좋게 하라”는 노자의 `도덕경'이 연결되기도 했지요. 그 집에선 물의 일종인 커피를 마시면서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습니다.

하버드대 출신들이 스타트업 프로젝트로 만든 `겟어웨이(Getaway)'라는 것이 있더군요. 하룻밤에 99달러를 내고 숲 속의 이동식 오두막을 이용하는 은둔형 여가활동입니다. 그런 오두막에 홀로 있으면 어떤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는 걸까요?

2월의 남은 날들도 그런 오두막 같은 커피집을 찾아 홀로 걷고 싶습니다. 알렌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시 `너무 많은 것들'에 나오는 너무 많다는 커피는 경계하면서 말입니다. 너무 부족한 공간과 나무와 침묵에 대해 미안하면 안 되잖아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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