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02.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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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 방석영<무심고전인문학회장>

우리 사회 그 어디에도 성추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지대는 없는가? 성추행 근절을 위한 가장 시급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 측 대리인단이 지난 21일 안 전 검사장에 대한 수사가 미진하다며 성추행 진상조사단을 항의 방문, 성추행 진상조사단이 출범 3주가 지나도록 안 전 검사장 소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날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소속 김 모 부장검사가 여성 부하 직원 2명을 강제 성추행한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구속 기소됐다. 검찰이 이메일을 통해 조직 내 성추행 등 성범죄와 관련한 제보를 받는 과정에서 김 모 부장의 혐의를 포착해 “증거 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성추행 파문은 법조계 뿐만 아니라 문학-연극-연예계 등에 뿌리 깊게 만연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이 한국 시단의 원로인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고발한 데 이어,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이윤택(66)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받았다고 고발했다.

`김보리'라는 필명의 한 네티즌도 이윤택 전 감독에 의해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으며 배우 이승비, 김지현이 충격적인 고발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윤택 전 예술 감독은 지난 19일 “노래 가사를 쓰듯이, 시를 쓰듯이”사과문을 만들어 단원들과 함께 리허설까지 거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경남 지역 B극단 조모 대표의 성추행 사실도 지난 18일 서울예대의 한 여학생에 의해 폭로된 바 있다.

청주대학교에서 공연영상학부 조교수로 재직했던 배우 조민기 씨도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해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사직했다는 추문에 휩싸였지만, 조씨 소속사가 “조민기의 성추행 의혹은 명백한 루머이고 교수직 박탈 및 성추행으로 인한 중징계 역시 사실무근이다”고 밝히는 한편, 조씨가 직접 JTBC `뉴스룸'과의 전화 통화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주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신인 배우 송하늘이 지난 20일 자신의 SNS에 “조민기 교수가 억울하다며 내놓은 공식입장을 듣고 분노를 견딜 수가 없었다”며 조씨의 성추행 사실들을 낱낱이 폭로하자, 조씨 소속사는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당초 입장을 바꿨으며, 충북지방경찰청이 조씨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태근 전 검사장, 이윤택 전 예술 감독, 조민기 전 청주대 조교수는 이제 더 이상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해선 안 된다.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이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안 전 검사장은 자신이 누이동생이, 이 전 예술 감독은 자신의 조카가, 조 전 조교수는 자신의 딸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한 짓과 똑같은 짓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명명백백해 질 것이다. 성추행 사건들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하며 감정을 배설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내 안에 뿌리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성적 욕망의 끈적임을 성찰하고 비워내야 한다. 차제에 다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성(性) 관련의 그 어떠한 거대 담론보다도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즉 `자기 자신이 하고 싶지 않고 당해서 싫은 일을 그 누구에게도 원하거나 강요하지 말라'는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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