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별
어떤 기별
  • 안희자<수필가>
  • 승인 2018.02.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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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일 맹추위가 이어졌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에 외출했다 돌아오면 몸이 꽁꽁 얼어붙은 동태처럼 뻣뻣해진다. 바깥출입은커녕 조석으로 끼니 챙기는 일도 성가시다. 덩달아 마음까지 써늘해진다.

추위를 녹여주려는 듯 오후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와 해찰을 떤다. 소파에 길게 누웠다. 한낮 정적을 깬 것은 집 전화벨 소리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 메마른 가슴에 단비 같은 그녀 전화에 화들짝 놀랐다. 얼마나 고대하던 기별인가. 그녀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삼십 년 지기지우(知己之友)다. 지난달에 몇 번이나 전화해도 받질 않아 의아했었다. 언젠가 직장 일이 고되다며 하소연하더니 몸져누운 것은 아닐까, 걱정이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평소 경쾌했던 목소리와 달리 짧은 호흡과 긴 한숨소리에 쓸쓸함이 묻어 있다. 탁한 저음의 목소리가 길게 이어지더니 기어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예상치 않은 비보를 접하고 보니 기막힌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이라니. 남편의 장례식은 이미 한 달 전에 치렀다고 했다. 경황이 없어 연락을 못했다는 말과 함께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단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도 의연하게 견디고 살아왔던 그녀의 삶이 안타까워 말을 잇지 못했다.

큰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부모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성격이 쾌활하고 소탈해서 금방 가까워졌다. 풍족한 살림이었음에도 늘 겸손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내 생일날은 허투루 여기지 않고 특별히 돈가스를 사 주기도 하고, 학교 소풍 때면 그 시절에 귀했던 고기김밥과 바나나를 넉넉히 싸서 주기도 했다. 지금은 타지에 살고 있어 자주 만나지 않지만 짬짬이 안부를 묻는 다정한 벗이다. 무엇보다 내게 큰일이 있거나 몸이 아플 때면 먼저 달려와 위로해주었던 따뜻한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은 가정에 소홀했었다. 하릴없이 밖으로만 나돌았고 휴일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았으니 가족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집안의 대소사는 오직 그녀의 몫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승승장구했었지만 결국 퇴출당하였다. 허울뿐인 남편은 퇴직금이 바닥나자 그녀에게 생계를 책임지라며 밖으로 내몰았다. 힘들어도 자식들 생각에 참고 일했던 그녀. 그녀의 삶은 지난했지만 운명이라 생각할 뿐 신세 한탄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울린다. 빈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았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단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병원 신세를 지고 간다는데, 그런 빚은 지지 않고 떠났으니 고마운 일이라 했다. 그 마음이 눈물겹다. 동장군의 기세가 맹렬하다. 그녀는 홀로 지새우는 삭풍의 겨울밤이 얼마나 춥고 허허로울까.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살아온 여인. 엄동설한에 핀 설중매 같은 여인은 오늘도 삶의 전쟁터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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