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밥사·봉사를 위해
감사·밥사·봉사를 위해
  • 김기원<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2.21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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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여사(女史) 한 명이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던 시대가 있었지요.

`학사 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도사, 도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여사'란 말이 회자할 정도로 여사의 위세가 대단했어요.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 영부인이었던 이순자 여사의 영향력과 정·관계에 포진해 있던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의 파워를 풍자한 말입니다.

육사가 박사 도사보다 위인 것은 육사출신 장성들이 낙하산 타고 정·관계에 진출해 석·박사들에게 이리왈저리왈 하며 군림해서이고, 여사가 육사 위인 것은 육사 출신 장성들이 이순자 여사에게 잘 보이려 머리를 조아려서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월급까지 줘가며 교육시켰는데 지키라는 나라는 안 지키고 정·관계에 진출해 정권의 하수인 노릇 하는 육사출신 장성들. 더 가관인 것은 그런 장성들이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 또는 자리보전을 위해 여사의 눈치를 보거나 아첨을 떠니 지켜보는 국민의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요.

여사는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또는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부르는 호칭인데 그때는 오로지 이순자를 위한 이순자만의 여사였으니 시쳇말로 웃기는 짬뽕이었지요.

그렇게 세태를 풍자했던 깨어 있는 국민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맞으며 군정을 종식시킨 덕에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육사와 여사의 전횡 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박사 위에 육사·육사 위에 여사'란 해괴한 말도 역사박물관에 박제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그와 유사한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했으니 `학사 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도사, 도사 위에 감사, 감사 위에 밥사, 밥사 위에 봉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하긴 서슬 퍼런 육사와 여사의 자리를 감사와 밥사와 봉사가 꿰찼으니 놀랄 만도 하지요. 참으로 좋은 현상이고 바람직한 변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사와 석사와 박사는 자신의 영달을 위한 스펙 쌓기이거나 자신의 삶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함인데 감사와 밥사와 봉사는 내 곳간에 쌓아 놓은 재능과 재물을 남에게 내어 주는 것이니 한 수 위가 분명합니다.

석·박사란 스펙이 없어도, 세상을 꿰뚫는 도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게 감사이고 밥사이고 봉사여서 참 좋습니다. 아니 석·박사보다 도사보다 더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여서 그들을 존경합니다.

그래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오를 수 있는 `사'가 바로 감사이고 밥사이고 봉사입니다. 그러나 말은 쉬워도 쉽게 오를 수 없는 것 또한 감사와 밥사와 봉사입니다. 돈 있고, 유식하고, 지체 높은 사람일수록 받는 데 귀신이고 주는 데 등신이니 그럴 수밖에요. 99억 가진 이가 100억 원을 채우려고, 999억을 가진 이가 1000억 원을 채우려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지갑을 터는 세상이니까요.

`감사'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고, 보은할 줄 아는 행동하는 양심이며, 잘못과 허물을 내 탓이라 여기며 개과천선하는 것입니다. 존 헨리 박사는 감사가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라 했고, 탈무드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밥사'는 내 지갑을 열어 친구와 가난한 이웃들에게 밥을 사는 사람입니다. 갑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사는 밥이 아니라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사는 밥을 말합니다. 밥은 생명이니 생명을 이어주는 거룩한 행위이며, 밥을 사서 같이 먹는다는 것은 식구처럼 중히 여긴다는 의미이니 그리할 일입니다.

`봉사'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보다 남을 위해 힘을 바쳐 애씀입니다. 내 몸과 재능과 재물과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야말로 지상 최고의 선이며, 모든 `사'의 으뜸입니다. 하여 그대를 응원합니다. 멋진 감사와 밥사와 봉사가 되기를.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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