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박윤희<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02.2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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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박윤희<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1년 8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아들이 제대했다. 본인은 물론 내 마음도 벅찼다. 남들 다 가는 군대라 하지만 걱정되는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어리게만 보였던 아들이 이젠 듬직해 보이는 것은 군대의 힘일까? 그동안 나름 잘 자라준 아들에게 고맙다.

사실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조기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태교부터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 봤다. 큰아이가 18개월에 한글을 떼자 영재 아닌가? 라는 기대감으로 나의 행보가 넓어졌다. 아이 교육에 관한 것이라면 어디든 달려갔고 좀 더 똑똑한 아이로 키우려는 욕심에 학원을 8개까지 보냈었다. 엄마가 짜 놓은 플랜에 의해 자신의 스케줄이 달라지는 아이의 마음 따윈 내게 보이지 않았다. 내 아이는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몫으로 생각했고 아이에게 버거울 것을 알면서도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 놓고 아이가 지켜주길 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학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학원에 안 온 지 2주가 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2주 동안 학원에 안 올 동안 왜 연락을 안 해주고 이제야 연락하느냐고 질문에 도리어 학원선생님은 학생이 많아서 관리하기 쉽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그날로 학원을 그만두었다. 6살부터 짜 놓았던 계획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의 말은 학원 다니기 싫다는 거였다. 하지만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이 두려웠다는 아들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힘든 것보다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 두려웠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를 위한 일이었는데 아이를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프로크루스테스였음을 고백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신화에 따르면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는데 프로크루스테스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침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바로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로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로 `자기 멋대로 기준을 정해 놓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재단하는 아집, 편견, 독단을 가리킨다고 한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아이의 감정이나 생각은 고려하지 않고 나의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던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되짚어 아이에게 행했던 나의 기준을 버리고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자 노력했다.

모든 인간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다. 문제는 이 침대가 매우 단단하여 잘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꺼내 부숴 버릴 때 비로소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되지 않을까?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잘 커 준 아이에게 고맙고 나의 잘못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하고픈 하루이다. 이젠 성인이 된 아들이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책임지고 헤쳐나가 주길 뒤에서 지켜봐야겠다. 그것이 부모의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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