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과 롱패딩
동계올림픽과 롱패딩
  • 이수경<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이미지소통전략
  • 승인 2018.02.2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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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 이수경<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이미지소통전략가>

요즘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선수들을 보며 밤잠을 설치거나 꺾였던 의지를 다시 불태우리라 마음먹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선수가 올림픽 신기록으로 놀라게 하고, 기대했던 선수는 열심히 내달리다 뜻하지 않은 타인의 실수로 넘어지기도 하고, 긴장한 나머지 실력을 발휘 못 해 기회를 잃기도 한다. 생각지 못한 많은 일이 일어 나는 게 인생사다. 인생을 내달리다 보면 기회가 오거나 나에게 나침판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고, 가는 길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상처를 입히는 사람도 생긴다. 다시 일어나서 가던 길을 힘차게 가던가 주저앉아 포기하든가는 온전히 내 의지의 몫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일까? 유난히 춥고 매서운 바람 때문일까? 롱 패딩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히트상품이 되었다.

올해 겨울 거리에는 두 부류의 사람 즉 롱패딩을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의류 브랜드 마다 롱패딩으로 진열장을 채울 만큼 유행아이템이 되었다.

왜 이처럼 인기가 있는 건지 롱패딩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운동선수들이 즐겨 입던 옷이어서 `벤치 패딩'이라고 불리는 롱패딩은 벤치에 대기하면서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입던 옷이었다. 패딩은 파카(Parka)에서 유래했는데 에스키모인들이 사냥으로 얻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외투에 방풍, 방한을 위해 후드를 달고 그 둘레에 털을 두른 옷이 파카이다. 1936년 스포츠용품점의 주인인 미국의 에디 바우어가 겨울 낚시 여행 중 저체온증을 겪었고 이 때문에 방한용 재킷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패딩재킷을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곳은 프랑스였다. 캠핑 장비업체인 몽클레르(Moncler)에서 1952년 공장직원을 위해 작업복으로 다운 재킷을 만들어 공급, 재킷의 성능이 좋아 프랑스 산악 팀에 패딩재킷을 공급한 데 이어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서 프랑스 알파인 스키팀이 이 재킷을 유니폼으로 채택하면서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고대 우리나라에는 롱패딩을 대신할만한 어떤 옷이 있었을까?

무릎 밑까지 내려가는 길이로, 조선을 통틀어 기록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옷으로 구로 표현되는 갖옷은 말 그대로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을 통칭한다. 지금의 모피코트가 그러한 것처럼 그 시대에도 사치품의 대명사로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소비됐던 품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처럼 대중적인 옷으로는 두루마기가 있다. 흥선대원군이 의복제도를 크게 개혁하면서부터 두루마기를 고안해 겉옷으로 삼게 하였다. 이 옷에 솜을 넣어 입고 있으면 상·하의가 되고, 잘 때에는 이불을 대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마땅한 옷으로 채택했고, 두루두루 막 입을 수 있는 옷이니까 `두루막'이라 하자고 결정, 그 뒤 그 말이 점점 변해 `두루막이'가 `두루마기'라 불리게 됐다는 재밌는 사실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유행을 따르는 걸까?

사람들이 유행을 따르는 심리를 살펴보면 보편적으로 동조(同調, conformity)와 소속감 동기(belongness motive) 두 가지 현상이 관련된다. 소외되지 않았다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의 가녀린 모습이지만 정답을 알고 있어도 오답을 따라가고, 어울리지 않음에도 행하는 것보다는 결국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나 자신이므로 나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나다울 수 있는 것을 소외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벗어던지지 말고 온몸을 덮어 감싸는 롱패딩처럼 스스로를 찾아 따뜻이 감싸보자. 온전히 나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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