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체포
긴급체포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8.02.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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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가끔씩 두 팔을 벌려본다. 돋아있는 날개가 신기하여 다섯 해를 넘긴 지금도 나는 생시인가 한다. 날갯죽지로 날아보려 푸득거리다 곤두박질치기가 다반사였다. 쉰을 향해 달리는 나에게 운전은 날개였다. 발목을 묶던 사슬이 풀려나가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그곳을 탈출해 맛보는 자유가 이런 느낌일 것 같다. 겁이 많아 용기의 문을 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아반떼는 나의 일부였다. 애마 없이 아무데도 못 가는 바보가 된 나를 출근도 시켜주고 퇴근도 시켜준다. 마음이 소요스러울 때는 고즈넉한 산사에도 데려가 준다. 주인이 추울까 봐 금방 운전대와 의자를 따뜻하게 데우는 센스도 있다. 값이 아닌 소중한 순위로 매긴 내 재산목록에도 들어 있다.

이런 녀석에게 큰 사고가 났다. 서 있는 뒤통수를 다른 차가 와서 세게 박아버렸다. 새 애마에게 일 년 만에 일어난 참사였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아직 그 아픔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다시 해가 바뀌자마자 커다란 상처가 났다. 주기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 무슨 변고인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애마에게도 가혹한 형벌이다. 주말에 세워두었다가 출근을 하려고 보니 커다란 흠집이 보인다. 누군가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냥 도망을 가버렸다. 검은색으로 긁혀져 있고 눈 밑이 깨져 금이 가 있다. 아파트의 CCTV도 개인은 보여줄 수가 없고 블랙박스는 붙어 있지 않아 경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잡지 못한다고 한다. CCTV의 화면은 너무 흐리고 밤이어서 더 힘들다는 것이다. 나도 결과를 어느 정도는 감수한다. 범인을 잡기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위안을 삼고 싶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양심을 마음속에 있는 삼각형이라 비유했다. 가책을 느낄 때마다 삼각형의 모서리로 마음을 찔러 아프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심하던 통증이 갈수록 무디어지면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여 죄의식도 무감각해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어둠에 가려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완전범죄로 끝이 난 줄 알지만 그날의 훤한 달빛이 내려다보았을 터이다. 아파트 옥상의 카메라도, 주위에 다른 차의 블랙박스도 지켜보고 있었다. 단지 확인이 안 될 뿐이다. 혹여 증거가 없다 한들 자신에게 걸리는 체기는 어찌할 것인가.

아마도 그 누군가는 지금쯤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을까. 언제 덜컥 연락이 오지 않나 하여 조릿조릿할지 모른다. 마음의 재판관이 잘못 판결을 내린 그때부터 자신은 스스로 죄인이 되었지 싶다. 잠깐의 실수로 주말 내내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런 날들을 보낼지 모르는 일이다. 마음 안에 양심이 머무는 동안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끝까지 기억 속에서 그를 편히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행여 누군가가 밝혀지지 않은 채 이대로 미궁으로 끝이 날지라도 나는 괜찮다. 모서리에 찔릴 때마다 아파했고 후회하면 되었다. 지금까지도 벌을 받고 있을 것이기에 그걸로 족하다. 부디 이 실수가 다음의 두 번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의 형틀에 매인 그가 환영으로 보인다. 나는 그의 양심을 단박에 체포하고 말았다.

“당신의 양심을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부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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