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만 좋은 대학 창업 정책
허울만 좋은 대학 창업 정책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02.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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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박근혜 정부부터 현 문재인 정부까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학 창업정책이다.

대학생 창업을 활성화해 일자리도 만들고 젊은 창업가를 육성하는 게 목적이지만 창업이 말처럼 쉽지 않다.

성공 신화를 일군 오너조차 창업을 모 아니면 도 라고 표현할 만큼 사업은 인생을 걸어야 한다.

김상곤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충북대 학연산 공동기술연구원을 방문해 학생 창업자, 창업 동아리 대학생들을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대학생 창업 지원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장관은 아낌없이 지원은 하되 그 이유로 “일자리 창출이 정부가 직면한 시급한 현안”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대학생들이 창업하고 싶어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국내 벤처기업 10개 중 6개는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현실에서 대학생 창업자들이 정부가 해야 할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대한상공회의소가 2017년 발표한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보고서에서 창업 1라운드인 지난 10년은 초고속 창업 절차, 진입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벤처 기업 수는 사상 최대인 3만 개를 기록해 성공했지만 이후 벤처투자 생태계 미비, 판로난 등으로 창업기업의 62%는 3년을 버티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벤처기업 생존율은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비해 크게 뒤진다. 한국의 생존율은 조사대상 26개국 가운데 25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수십 년 한 직종에서 일한 전문가도 창업시장에서 3년을 버티지 못하는 판에 대학생들에게 창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독일계 회사 토마스에서 20년 근무하다 창업한 ㈜JH 컴퍼니 제준호 대표를 만났다.

무분진 케이블선과 지진 발생 시 통신 서버 랙을 보호할 수 있는 듀플렉스 면진 테이블을 개발한 제 대표조차 자신의 성공을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제 대표는 독일기업처럼 대기업이 경쟁력 있는 신생기업을 화초 가꾸듯 멘토 역할을 하면 공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소수의 대기업이 산업 전체를 독식하는 한국에서 유망한 벤처기업은 대기업의 먹잇감이지만, 매출 1조가 넘는 강소기업이 수두룩한 독일에서 신생기업은 상생을 도모할 파트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진출 시장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제 대표는 “대기업이 작은 기업을 화초 가꾸듯 멘토역할을 하고 성공한 기업은 대학에 재투자해야 한다”며 “독일 기업은 수익 일부를 대학에 기탁하고, 대학은 기금을 재학생의 해외 연수비로 사용한다. 학생들은 외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과제물로 제출하면 기업은 외국시장을 개척할 때 과제물을 바탕으로 계획을 짜고 현지 직원으로 대학생을 채용해 시장조사에 드는 비용을 줄인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의 국가별 기업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창업 등록 소요시간은 4일. 여권을 발급받는 기간보다 빠르다.

프로들도 생존이 어려운 현실에서 대학생 창업자들이 살아남게 하려면 컬링 종목의 선수처럼 정부와 대기업이 부지런히 길을 닦아주고 밀어줘야 한다. 지원금만 주고 뒷짐만 진다면 세금만 축낸 또 하나의 폐기될 선거공약으로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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