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예술, 그리고...
괴물과 예술, 그리고...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2.2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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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궁극적으로 문학은 가짜다. 좀 심한 말인가. 작가의 상상력으로 꾸며낸 허구라는 뜻인데, 요즘엔 차라리 거짓이고 가짜라는 통렬함으로 꾸짖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러 문학 장르 가운데 그래도 시(詩)는 꾸며낸 이야기와 일정 부분 간격이 있다고 여겨왔다. 내 순진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뜻 깊은 만남마다 선물했던 시집 `순간의 꽃'이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는 걸 또 다른 시인이 깨닫게 해주었다. 세상아!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솜구름 널린 하늘이더라」라는 수려하기 그지없는 언어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 <괴물>로 폭로되고 고백 되기에 이르면 얼마나 추악한가. 끔찍하다. 한 출판사에 의해 2009년 개정 교육에 따른 11종의 문학교과서와 11종의 교과서에 수록된 현대 시에 대한 한 참고서는 `순간의 꽃'에 이딴 의미를 부여했다. “문학은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공유되는 문학작품을 향유함으로써 공동체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하고, 공동체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도 한다. 특히 이 시는 바람직한 공동체적 삶 자체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를 통해 독자는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라고… 개뿔! 황망하기 그지없다. 이런 대접을 어린 수험생들은 그저 달달 외워야 하는, 정녕 <괴물>같은 세상인 것인가. 그놈의 공동체는 도대체 누구만을 포함하는 것이고, 누구의 삶과 몸, 그리고 마음과 인권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농락해도 되는 별천지인 것인가.

독일의 극작가, 시인, 연출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통해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중략>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고 탄식한다. 그는 `연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존재를 믿게 한다거나 그 인물들과 동화되도록 해서는 안 되며, 서사 시인들이 쓰는 기법과 같은 방법을 따르도록 해야 하고, 그 방법을 통해 관객은 그가 무대 위에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깨닫고,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구경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연극 또한 허구이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연출력과 기발한 발상의 전환, 또는 대본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토록 <괴물>이거나 짐승 같은 짓을 그의 말대로 `관행적으로'해 왔다 해도, 이걸 믿을 수 있겠는가. 세상을 한 판 잘 속이고, 완벽하게 포장된 가면으로 살아왔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그의 무대가 과연 작품이었는지, 아니 그보다 그가 온전한 세상을 살아오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 여성을 짓밟은 대가를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정도의 분노는 차라리 너무 가볍다.

평생 지워질 수 없는 상처와 굴욕,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되살아날 공포와 두려움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비극을 만드는 짓은 인간,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세상이 얼마나 생지옥 같으면 `미투운동'이 이처럼 들불처럼 번지겠는가. 그동안 가해자들은 얼마나 뻔뻔하게 살아왔으며, 피해자들은 또 얼마나 분노와 공포와 수치심에 휩싸여 세상을 원망하고 탄식하며 숨죽여 지내왔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미국의 미투가 헐리웃 여배우들로부터 비롯되었으되, 여태껏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는 것과 우리는 한참 다르다. 바로 법으로 먹고사는, 법대로 존엄과 권위를 유지하는 검찰에서 비롯된 이상 단죄는 분명 이루어질 터인데, 이게 위로와 치유가 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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